3일 전에 뭔가 나왔다
지난 17일, 앤트로픽이 새 도구를 공개했다. 이름은 Claude Design.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디자인이 나온다. 창업자도, 기획자도 쓸 수 있다.” 대략 이런 설명이었다.
Figma 주가가 12% 빠졌다. Adobe도 4% 내렸다.(기즈모도)
그리고 어김없이, 그 말이 나왔다.
디자이너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이미 들었던 말이다
이 말은 처음이 아니다.
포토샵이 나왔을 때도 들었다.
누구나 사진을 편집하는 시대가 온다.
맞았다. 누구나 사진을 편집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포토샵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해서, 좋은 사진 편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지는 않았다.
도구가 민주화된다고 안목도 민주화되지는 않는다.
만드는 것과 쓰는 것
AI 이미지 생성기를 써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프롬프트를 넣으면 결과물이 나온다. 빠르다. 그럴듯하다.
그 다음이 문제다.
10개가 나왔다. 어느 걸 써야 하는가. 당신의 브랜드 컬러는 딥 네이비다. 결과물 중에 딥 네이비 계열이 3개 있다. 그런데 하나는 명도가 약간 다르고, 하나는 배경과 대비가 부족하고, 하나는 타이포와 무게감이 안 맞는다.
어느 걸 고르는가.
그리고 고른 다음에도 일이 있다. 해상도 확인. 인쇄용이라면 CMYK 변환. 웹용이라면 파일 포맷과 용량 최적화. 레이아웃 안에서의 여백 조정. 다른 요소들과의 시각적 무게 균형.
이 과정이 디자인이다.
AI가 이미지를 만들어준다고 해서 이 과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토스가 실험해봤다
한국에서 이걸 직접 해본 회사가 있다.
토스다. 토스는 AI로 UI 화면을 만들어봤다. 결론은 이랬다.
AI 단독으로는 프로덕션 단계에 쓸 수 없었다.
이유가 흥미롭다. AI가 결과물을 못 만들어서가 아니었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제대로 고르고, 수정하고, 시스템 안에 끼워 넣는 과정에 디자이너의 판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토스는 이 결론 끝에 이렇게 썼다.
역설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면 디자이너에게 더 근본적인 작업이 보였다.
만드는 것이 자동화되면, 쓰는 것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더 선명해진다는 뜻이다.
Nielsen Norman이 2년을 들여 확인한 것
UX 업계에서 가장 냉정한 평가로 알려진 Nielsen Norman Group은 AI 디자인 도구를 2년 동안 체계적으로 검토했다. (Nielsen Norman Group 2026)
2024년 결론은 “아직 쓸 수 없다”였다.
2026년 결론은 “조금 나아졌다”였다.
구체적으로는 이랬다. 레이어 정리, 타이포 정돈, 짧은 문구 수정 같은 좁은 작업에서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화면 전체를 디자인해줘” 수준으로 넘어가면 여전히 실망스러웠다. 사용자 흐름, 접근성, 엣지 케이스를 고려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문장을 남겼다.
판단력, 우선순위 설정, 시스템 사고는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평균이 쉬워지면 안목이 비싸진다
Figma가 올해 전 세계 디자이너 9,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91%가 AI 도구가 디자인을 개선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전반적인 디자인 품질이 좋아졌는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갈렸다. 36%는 좋아졌다고 했다. 35%는 나빠졌다고 했다. 29%는 같다고 했다.
거의 삼등분이다.
도구는 좋아졌는데, 결과물의 품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왜 그럴까.
보고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평균적인 결과물이 더 쉽게 나올수록, 그 평균은 보이지 않게 된다. 안목(taste)이 더 값어치 있어진다.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될수록, 잘 만든 것을 알아보는 눈이 희소해진다는 뜻이다.
Claude Design이 해결 못 하는 것
Claude Design은 회사의 디자인 시스템을 읽어 일관성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꽤 인상적인 기능이다.
그런데 디자인 시스템은 어디서 오는가.
디자이너가 만든다.
브랜드의 색이 왜 딥 네이비여야 하는지, 서체의 무게감이 왜 이 정도여야 하는지, 여백은 왜 이만큼이어야 하는지. 그 판단들이 쌓여서 디자인 시스템이 된다. AI는 그 시스템을 읽고 따를 수 있다. 그 시스템을 설계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는, AI가 만든 결과물 중에서 무엇이 맞는지 판단하는 일도 남는다.
“AI 시대에 디자이너가 사라진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만드는 역할은 줄어든다. 쓰는 역할은 남는다. 그리고 쓰는 역할이 남으려면, 결과물을 보고 맞고 틀림을 알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AI가 10개를 내놓을 때, 당신은 무엇을 고르겠는가
도구가 빨라질수록, 판단은 느릴 수 없다.
AI가 10개의 결과물을 1초에 만들어주는 시대에, “어느 것을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10분을 쓰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10분을 써서라도 제대로 골라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10분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뭔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는 감각으로 고르는 사람과, 대비가 부족하고 브랜드 무게감과 맞지 않는다는 걸 정확히 짚어내는 사람이 고른 결과물은 다르다.
AI가 만드는 것을 배우는 데 5분이면 된다.
제대로 쓰는 것을 배우는 데는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FAQ
Claude Design은 빠른 개념 탐색이나 내부 자료 제작에는 유용합니다. 그런데 브랜드 일관성이 중요한 클라이언트 작업이나 캠페인급 결과물에서는 AI가 만든 것을 보고 맞고 틀림을 판단하는 사람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앤트로픽 스스로도 “비디자이너를 위한 도구”라고 설명했습니다. 디자이너를 대체하는 도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AI는 결과물을 만들어주지만, 그 결과물이 당신의 브랜드 컬러에 맞는지, 다른 디자인 요소들과 시각적 무게가 맞는지, 인쇄 사양에 맞는지는 AI가 자동으로 확인해주지 않습니다. Nielsen Norman Group의 2년간 연구에 따르면, AI 디자인 도구는 좁은 작업에서는 효과적이지만 전체 화면 수준의 판단에서는 여전히 사용자 흐름과 엣지 케이스를 놓칩니다.
Figma가 2026년 전 세계 9,000명 이상의 디자이너를 조사한 결과, 전반적인 품질에 대한 평가는 좋아졌다/나빠졌다/같다로 거의 삼등분 됐습니다. 도구가 좋아졌는데 품질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 중 하나는, 도구 접근성이 올라갈수록 안목 없이 만든 결과물도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AI 도구를 쓸 수 있는 것과, AI가 만든 결과물 중에서 무엇이 맞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역량입니다.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AI로 빠르게 만드는 능력보다, 만들어진 것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수정하는 능력입니다. 토스는 이것을 “시스템 설계 역량”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건 다른 글에서 더 깊이 다뤘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AI가 반복 작업을 가져가면서 신입이 “만들면서 배우는” 경로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만드는 것의 자동화보다 더 구조적인 질문입니다. 커리어 사다리의 첫 칸이 흔들리는 이야기는 별도로 다루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