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가 미팅에 들어오더니 피그마로 만든 화면 시안을 꺼냈다. 디자이너가 없는 자리였다. “AI 도움 받아서 대충 만들어봤어요.” 대충 만든 것치고는 꽤 그럴싸했다.
다음 날엔 디자이너가 커서로 짠 프론트엔드 코드를 가져왔다. 개발자가 검토하기 전에 이미 스테이징 서버에 올려놨다. “버튼 하나 바꾸는 건데 굳이 개발자 기다릴 필요 없을 것 같아서요.”
두 장면 모두 AI 시대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일이다. 문제는 팀장이 이 상황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
피그마(Figma)가 2025년 발표한 리서치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AI 덕분에 담당 업무 범위가 넓어졌다고 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PM의 65%가 디자인 업무를 직접 하고 있고, 개발자의 57%가 프로토타이핑에 참여하고 있다.
이건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AI 도구가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 비전문가도 전문가 영역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닐슨노만그룹(Nielsen Norman Group)은 이 흐름을 UX 직군에서 먼저 포착했다. 2025년 발표한 아티클 “The Return of the UX Generalist”에서 AI가 UX 제너럴리스트를 부활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10년간 세분화됐던 UX 역할이 다시 한 사람이 여러 영역을 커버하는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이다.
UX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획, 디자인, 개발. 어느 팀이든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AI 도구가 경계를 지우고 있는 것이다.
방치하면 생기는 일
역할 경계가 무너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속도가 빨라지고, 사일로가 줄어들고, 협업이 유연해진다. 나쁜 일이 아니다.
문제는 팀장이 이 변화를 방치할 때 생긴다.
기획자가 디자인 시안을 AI로 만들어 오면 편하다. 빠르다. 그런데 그 시안의 최종 품질은 누가 책임지는가. 기획자가 만든 UI가 접근성 기준을 지키고 있는지, 디자인 시스템과 충돌하지 않는지, 이걸 검수할 사람이 없으면 오류가 그대로 서비스에 반영된다.
디자이너가 코드를 짜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배포됐지만 코드 품질이나 보안, 기존 아키텍처와의 정합성은 개발자가 보지 않으면 모른다.
| 팀장이 방치할 때 | 팀장이 설계할 때 |
|---|---|
| 모두가 모든 걸 다 함 | 주도 역할과 지원 역할 구분 |
| 책임 소재 불분명 | 전문가가 최종 품질 책임 |
| 빠르지만 얕음 | 빠르면서 전문성 유지 |
| 팀원 정체성·동기 저하 | 역할 확장을 성장으로 경험 |
팀장이 그어야 하는 역할 경계선
역할 경계가 이전처럼 돌아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계가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경계의 모양이 바뀐 것이지, 경계의 필요성이 없어진 게 아니다.
팀장이 새로운 경계를 설계하는 원칙은 세 가지다.
첫째, 주도(Lead): 전문가가 최종 품질을 책임진다.
누가 AI로 무엇을 만들든, 결과물의 최종 품질 책임은 해당 도메인 전문가에게 있다. 기획자가 만든 UI 시안이라도, 최종 검수와 품질 책임은 디자이너가 진다.
둘째, 보조(Support): AI와 비전문가가 초안·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비전문가의 AI 결과물은 방향을 탐색하고 논의를 시작하는 재료로 쓴다. 그게 최종 결과물이 되어선 안 된다.
셋째, 검수(Review): 전문가가 비전문가의 AI 결과물을 반드시 검수한다.
이 단계를 생략하면 전문성이 사라진다. 빠른 결과물이 품질 없는 결과물이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 상황 | 팀장의 대응 |
|---|---|
| 기획자가 AI로 디자인 시안까지 들고 왔다 | 방향성 탐색은 인정. 최종 품질 검수는 디자이너가 주도 |
| 디자이너가 AI로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 개발자와 협업 구조 먼저 합의. 단독 배포는 제한 |
| 모두가 AI로 모든 걸 하려 한다 | 주도·보조·검수 역할을 명시적으로 재정의 |
| 전문직 팀원이 “내 역할이 없어지는 건가요?” 묻는다 | AI가 대체할 수 없는 전문가 역할을 팀 안에서 명확히 |
| 역할 모호로 팀원 간 갈등이 생긴다 | 팀원이 함께 참여하는 역할 재정의 워크숍 |
팀장이 가져갈 것
역할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막으려 해서도 안 된다.
단, 그 유연함이 품질 저하와 책임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팀장이 새로운 경계를 그려야 한다. 이전엔 직함이 경계를 그었다면, 이제는 팀장이 직접 그어야 한다.
FAQ
단일 결과물 품질보다 반복 가능성과 시스템 정합성을 봐야 한다. 한 번은 좋아도, 전문가 검수 없이 반복하면 오류가 쌓인다.
“AI로 누가 만들어도 되지만, 최종 품질에 이름을 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로 시작하면 된다. 담당 도메인 전문가가 결과물에 이름을 걸고 책임진다는 원칙이 명확하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비전문가의 AI 결과물을 검수하고, 품질 기준을 세우고, 복잡한 케이스를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전문가만 할 수 있다. 역할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역할의 무게 중심이 바뀌는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
팀장 혼자 경계를 정해서 내려보내면 저항이 생긴다. 팀원이 함께 “누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누가 최종 책임을 지는가”를 논의하게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결과물 하나가 좋은 것과 그 품질을 반복 재현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전문가의 역할은 우수한 결과물을 시스템 안에서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전환된다.
AiLit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