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디지털 선도학교 교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사 개인이 AI 역량을 높인다고 해도, 학교 전반의 방향은 학교장이 가진다. 학교장이 필요성을 못 느끼면 결국 교사 개개인의 역량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 말에 지금 AI 교육의 현주소가 모두 녹아있다. 우리나라 교육계,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AI 인프라가 깔린 그 다음은?
2025년, 교육부가 수년간 공을 들이고 수조 원의 예산을 투입한 AI 디지털교과서(AIDT)가 마침내 전국의 교실에 도입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참담했다. ‘의무 도입’에서 ‘학교 자율 선택’으로 정책이 선회하자마자, 실제 채택률은 32.3%에 그친 것이다. 전국 1만 1,921개교 중 단 3,826개교만이 이 비싼 도구를 받아들였다.
현장이 이토록 냉담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기술의 완성도가 교육적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AI가 학습 데이터를 정밀 분석해 줄 것이라 기대했으나, 실제 교실에서 확인된 기능은 ‘단순 정답률 확인’ 수준에 머물렀다.
오히려 교사들은 수업 시간 내내 기기 접속 불량을 해결하느라 진땀을 뺐고, 학생들이 태블릿으로 유해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IT 보안관’ 역할로 전락했다. 도입 취지와 달리 학습을 방해하는 새로운 행정 업무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AIDT 도입 이후에도 ‘실제 접속률 0%’인 학생이 전국 평균 60%에 달한다는 통계는, 준비 없는 기술 도입이 교실에서 어떻게 겉도는지를 증명하는 뼈아픈 지표다.
행정 과부하, 그 위에 얹힌 AI
한국 교실의 구조적 고질병인 ‘행정 과부하’를 그대로 둔 채 기술만 얹은 것도 패착이다.
| 항목 | 한국 중등교사 | OECD 평균 |
| 주당 행정업무 시간 | 6시간 | 3시간 |
| 학부모 민원 스트레스 비율 | 57% | 세계 최고 수준 |
‘TALIS 2024‘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사의 행정 업무 시간은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근무 시간은 길지만 정작 수업에 집중할 시간은 부족한 기형적 구조다. 여기에 학부모 민원에 대한 심리적 압박까지 겹쳐 현장의 피로도는 임계점에 달해 있다.
이 상황에서 교육부는 “AI는 교사를 돕는 보조 도구일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 학생이 AI로 작성한 과제를 제출했을 때의 감점 기준은 무엇인가?
- AI 챗봇이 오답을 제시해 학생이 피해를 보았을 때 누구 책임인가?
- AI 활용 평가와 미활용 평가의 공정성은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교육 당국은 내놓지 않았다. 결국 모든 실행의 부담과 법적·윤리적 책임은 교사 개인의 몫으로 남겨졌다.
양적 연수의 한계
이어 지난 3월, 교육부는 2029년까지 총 1만 명의 교사가 AI 교육을 위한 연수 과정을 듣도록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보도자료를 통해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이렇게 밝혔다.
인공지능 교육의 성패는 교원의 전문성에 달려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연수를 마친 교사가 학교로 돌아갔을 때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학교장이 AI 교육의 방향을 공유하지 않으면, 연수받은 교사는 혼자 결정하고 혼자 책임진다. 기준이 없으니, 교사의 부담만 더해지고,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이 가중된다.
교육 전문 매체 에듀모닝의 분석은 이 상황을 “AI 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이 재정의되고 있지만, 재정의의 방향과 책임 주체가 불분명한 상태”로 진단한다. 교사가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보다, 누가 그 방향을 정하느냐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유럽은 다른 방향을 택했다. 핀란드, 에스토니아, 영국의 AI 연수는 학교장과 장학사 등 리더급 인사를 대상으로 ‘AI 윤리와 학교 전략’을 다룬다. AI 도입을 교사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학교 운영 책임의 영역으로 본다. 교장이 방향을 잡으면, 교사는 그 안에서 설계할 수 있다.
본질은 기술이 아닌 ‘교육적 설계’에 대한 고민
이러한 진통이 한국만의 외로운 싸움은 아니다. 2026년 6월 발표된 NPR과 입소스(Ipsos)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미국 K-12(유·초·중·고) 교사의 54%가 “AI가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저해한다”고 우려했다. 59%는 “AI 도입 이후 학생과의 정서적 신뢰 관계가 약화됐다”고 답했다.
그러나 똑같은 기술적 한계 속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사례가 존재한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CSU)의 야노스(Janos) 철학 교수는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등 대사상가들의 이론을 학습시킨 AI 챗봇을 수업에 도입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면 토론을 극도로 어색해하던 학생들이, AI 사상가들에게는 밤낮없이 질문을 쏟아내며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AI를 단순한 답안지가 아닌, 비판적 사고를 자극하는 ‘페이스메이커’로 재설계한 덕분이다.
“AI가 교실을 망친다”는 절망과 “AI가 수업을 살렸다”는 환호는 한 끗 차이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그것을 어떤 맥락에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적 설계’다.
지금 한국의 교사들은 아무런 나침반도, 제도적 안전망도 없이 그 거대한 설계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 학교 조직의 체질 개선과 명확한 지침 가이드라인 없이 교사 개인의 헌신만 짜내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AI 교육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FAQ
아니다. AIDT는 당초 ‘의무 도입’으로 설계됐다가 ‘자율 선택’으로 전환됐다. 교사들이 외면한 것이 아니라, 도입 전제가 달라진 상태에서 현장의 선택이 드러난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실제로 일부 교사들은 생성형 AI로 수업 계획서 작성, 가정통신문 초안 작업 등에서 시간을 절약하고 있다. 그러나 이 활용 역시 제도적 지원 없이 교사 개인의 탐색으로 이루어진다. AI 활용을 공식 업무 흐름으로 정착시키는 학교 단위의 설계가 없으면, 절감 효과는 일부 교사에게만 분산된다.
그렇지 않다. 현장에서 생성형 AI 활용 자체는 이미 확산되어 있다. 문제는 활용 여부가 아니라, 활용의 방향과 책임 구조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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