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에게 메시지가 왔다. “AI로 로고 만들어봤어요. 어때요?” 클릭한다.
뭔가 이상하다. 근데 뭐가 이상한지 말로 설명이 안 된다. “좀 더 다듬어야 할 것 같아”라고 했더니 돌아온 말.
AI가 만든 건데 뭐가 문제예요?
한 번쯤 겪어본 적 있을 거다.
면허와 서킷은 다른 얘기다
운전면허는 누구나 딸 수 있다. 도로에서 차를 굴리는 최소한의 자격이다. 근데 서킷에서 코너를 공략하는 건 면허증이랑 관계없다. 수천 번 같은 코너를 돌아본 사람만 아는 게 있다. 브레이킹 포인트, 타이어가 한계에 닿는 감각. 몸이 기억해야 한다.

AI 도구는 지금 디자인의 “면허”를 모두에게 쥐여주고 있다. Canva, Midjourney, Adobe Firefly. 클릭 몇 번으로 포스터가 나오고 로고가 나온다.
서킷은 여전히 다른 얘기다.
“어딘가 이상한 느낌”의 정체
디자이너들은 현업에서 배운 것들이 있다.
시각적 위계. 어떤 정보가 먼저 눈에 들어와야 하는가. 순서가 뒤집히면 보는 사람은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른다.
여백의 언어. 빈 공간도 말을 한다. 없으면 숨이 막히고, 너무 많으면 흩어진다.
색의 온도. 같은 파란색도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이 있다. 브랜드의 감정을 색이 결정한다.
타이포그래피의 무게. 폰트 하나가 전체 톤을 바꾼다. 고딕이냐 명조냐가 아니다. 무게와 자간, 어간이 브랜드를 만든다.
AI는 이 요소들을 학습 데이터의 평균값으로 조합한다. 그래서 나쁘지 않다. 충분히 그럴듯하다.
근데 “나쁘지 않은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2025년 Frontiers in Psychology 연구는 이걸 수치로 보여줬다. 인간이 만든 작품은 AI 작품보다 아름다움, 참신성, 의미 전달 면에서 일관되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차이는 존재한다. 근데 그 차이를 설명하려면 눈이 필요하다.
생산이 무한해지면 병목이 이동한다
디자인 전문 매체 Designative는 2026년 2월 이렇게 썼다. “생산이 무한에 가까워지면, 질문은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야 하는가’로 이동한다.”
AI가 로고 100개를 5분 안에 만든다.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사람이 필요하다. 고르는 눈이 없으면 100개는 그냥 100개다.
예전에는 자동차가 비쌌다. 아무나 트랙에 못 들어왔다. 지금은 AI가 누구에게나 차를 줬다. 트랙은 북적인다. 누가 잘 달리는지 알아보는 눈이 오히려 희소해졌다.
그 눈은 어떻게 기르나
좋은 소식이 있다. 심미적 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노출과 피드백을 통해 만들어진다. 훈련의 결과라는 얘기다.
좋은 레퍼런스를 의식적으로 쌓는다. Dribbble 말고, D&AD, 칸 라이언스, TDC 수상작을 본다. 평균값이 아닌 기준점을 뇌에 심는 게 목적이다.
“왜 이상한가”를 언어로 설명하는 연습을 한다. 마음에 안 드는 결과물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폰트 무게가 배경과 싸우고 있어서”처럼 꺼내야 한다. 설명 못 하면 아직 모르는 거다.
원본과 AI 수정본을 나란히 놓는다. 어떤 게 나은지가 아니라, 뭐가 달라졌는지를 본다.
본인 결과물을 일주일 뒤에 다시 본다. 만든 날 좋아 보이던 게 일주일 뒤엔 이상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 간격이 눈을 키운다.
AI가 만든 거잖아요, 뭐가 문제예요?
틀린 말이 아니다. 면허 시험은 통과했다. 도로에서 달리는 건 된다.
서킷에서 코너를 도는 건 다른 자격이다.
AI가 만들어낼 결과물의 양은 계속 늘어날 거다. 그 많은 것 중에서 좋은 걸 골라내는 눈, AI가 왜 틀렸는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 이게 앞으로 진짜 희소한 것이 될 거다.
그 눈을 갖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볼 때다.
FAQ
나쁘진 않다. 학습 데이터의 평균을 조합하니 그럴듯하다. 근데 “괜찮은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그렇다.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의 결과다. 좋은 것을 많이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AI를 잘 쓰는 쪽이 유리하다. “잘 쓴다”는 건 빠르게 다루는 게 아니라, 결과물을 고르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네 가지를 본다. 시각적 위계, 여백, 색의 온도, 타이포그래피. 이 네 가지를 언어로 설명할 수 있으면 눈이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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