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한테 물어봤더니 이 약 같이 먹어도 된대.
명절에 부모님 댁에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잠깐 멈칫하셨다면, 이 글이 딱 필요한 상황입니다.
부모님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데, 상처줄까봐 망설여지는 것도 있고요. 그냥 두자니 뭔가 찜찜하고요. 이 글은 그 ‘찜찜함’의 정체를 짚어드리고, 오늘 저녁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까지 드립니다.
우선, 왜 이게 중요한지 살펴봅시다
2025년, 한국은 처음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3%, 1051만 명을 넘어섰어요. 국민 5명 중 1명이 어르신(시니어)인 나라가 된 거예요.
그리고 그 어르신들, 이미 디지털 세상 한가운데 있습니다.

과기정통부·NIA 2024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60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97.7%, 인터넷 이용률은 97.4%예요. 메신저(카카오톡 등) 이용률은 91.5%. 흥미로운 건 지금부터입니다. 2024년 기준 인터넷 이용자 3명 중 1명(33.3%)이 ChatGPT 같은 생성형 AI를 써본 경험이 있고, 1년 전(17.6%)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는 점입니다. 이 숫자에는 부모님 세대도 포함되어 있죠.
자, 부모님이 AI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AI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스마트폰은 쓰는데, 판별은 어려운 이유
우리 엄마는 스마트폰은 잘 쓰시는데요?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어요. 쓰는 것과 판별하는 것은 다른 능력이라는 것.
과기정통부·NIA 2024 디지털정보격차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 대비 71.4%입니다. 스마트폰 보유율(97.7%)이나 카카오톡 사용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나죠.
기기를 켜고 앱을 여는 건 잘하십니다. 그런데 이 콘텐츠가 언론사가 만든 건지, 개인이 돈 벌려고 만든 건지, AI가 생성한 건지 구분하는 게 어려워요. 그 격차가 71.4%라는 숫자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 AI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AI 맹신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닙니다. 사실 훨씬 전부터 이어져 온 패턴인데요.
부모님 세대가 자라던 시대에 TV는 ‘공식 채널’이었습니다. “TV에서 봤다”는 말 자체가 사실의 증거였죠. 그 인식이 지금도 작동합니다. 유튜브 영상도 TV처럼 보이거든요. 채널 이름에 ‘연구소’, ‘센터’, ‘뉴스’가 붙으면 더 믿음직스럽고요.
한국언론진흥재단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5‘에 따르면, 50대의 61%, 60대 이상의 53%가 유튜브로 뉴스를 소비합니다. 조사 48개국 평균(각 31%, 26%)의 약 두 배에 달합니다. 시청 기간은 어떨까요. 통계청 ‘2025 노령자 통계‘에서 조사한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동영상 시청 시간은 2019년 하루 평균 3분에서 2024년 19분으로 6.3배 급증했습니다.

실제 사례가 있었어요. AI로 만든 가상의 중년 남성이 “농협은행 재직 30년 차 김재한 과장“이라고 소개하면서, 60세 이상에게 현금 35만원을 지급한다는 허위 영상이 일주일 만에 조회수 30만 회를 넘겼어요. 실제로 전국 농협은행 창구에 시니어 보너스를 신청하러 온 어르신들의 문의가 이어졌고요.
이제 여기에 AI가 더해졌습니다. TV보다 더 친절하게, 유튜브보다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면 바로 답해주는 새로운 ‘권위자’로 ChatGPT, 제미나이가 들어온 거예요.
왜 부모님이 AI를 더 잘 믿을까
많은 분들이 “부모님이 디지털을 몰라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연구 결과는 좀 달라요.
2024년 미국 유타대 벤 라이언스 교수 연구팀이 Public Opinion Quarterly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어르신들이 허위정보에 더 많이 노출되는 이유는 디지털 문해력 부족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험에서 허위 뉴스를 판별하는 능력은 어르신이 젊은층보다 더 뛰어났습니다. 그럼 왜 AI를 더 잘 믿을까요.

첫째, 확증 편향(내가 믿고 싶은 걸 더 믿는다)
이미 믿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정보를 더 신뢰해요. “건강에 좋다고 생각했던” 식품에 대해 AI가 긍정적으로 답하면, 그걸 확인해준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수십 년간 형성된 믿음 체계가 있는 어르신일수록 이 경향이 강합니다.
둘째, 반복 노출 효과(여러 번 보면 사실처럼 느껴진다)
단톡방에서 비슷한 내용이 여러 사람에게서 반복해서 오면 “이렇게 많이 얘기하는 걸 보니 맞겠지”가 돼요. AI도 같은 질문에 비슷한 답이 계속 나오면 신뢰가 쌓이는거죠.
셋째, 관계 우선 원칙(누가 전했는지가 중요하다)
어르신 세대는 정보의 정확성보다 누가 전달했는가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들이 보내준 카톡, 오래된 친구가 공유한 영상, 자주 보던 유튜브 채널. 모두 신뢰도 판단에 영향을 줍니다. AI도 매일 쓰는 익숙한 것이 되면 자연스럽게 신뢰감 있는 채널이 되는 거에요.
AI도 틀린다는 점을 알려드리세요
ChatGPT 같은 AI는 사실을 ‘저장’하는 게 아니에요. 수백억 개의 문장을 학습한 뒤, “이 다음에 가장 그럴듯한 단어는 뭘까”를 예측하는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모를 때도 “모른다”고 안 하고, 그럴듯하게 지어냅니다. 연구자들은 이걸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즉 환각이라고 부릅니다.
2026년 4월 독일 튀빙겐대 연구팀이 BMJ Open에 발표한 연구에서 ChatGPT·Gemini·Grok 등 5개 AI 챗봇에 건강·의료 관련 질문 250개를 던진 결과, 응답의 49.6%가 “문제 있음”으로 평가됐어요. 그 중 19.6%는 “심각히 문제 있음”이었고요. 연구팀이 “참고문헌 10개를 제시해줘”라고 했을 때, 250번의 시도 중 완전히 정확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어요.
AI는 틀릴 때도 자신 있게 말해요. 그 자신감이 진짜 전문가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거예요.
우리 부모님 AI 리터러시 체크리스트
아래에서 해당하는 것들을 체크해보세요.
🔴 지금 바로 대화가 필요해요
- “ChatGPT(AI)가 이 약 먹어도 된다고 했어” ▶️ 의료 결정을 AI에게 맡기고 있는 상황
- “AI가 이 투자 하면 된다고 했어” ▶️ 금융 판단을 AI에게 맡기고 있는 상황
- AI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이미 행동(약 구매, 송금 등)을 한 뒤에 이야기합니다
- 의사 말과 AI 말이 다를 때 AI를 더 믿는 눈치입니다
- 단톡방에서 받은 정보를 확인 없이 바로 공유합니다
🟡 유심히 살펴보세요
- 유튜브를 자주 보는데, 어떤 채널인지 자녀는 모르는 경우
- “방송에서 봤어”, “영상에서 봤어”를 자주 근거로 듭니다
- AI에게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묻고, 답이 달라지면 혼란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단톡방 정보를 자녀에게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합니다
🟢 지금이 좋은 타이밍!
- AI를 이제 막 써보기 시작했어요 ▶️ 습관이 굳기 전에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 단톡방 정보를 자녀한테 확인하려고 전화합니다 ▶️ 이 습관,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강화해주세요
- “이거 맞아?” 하고 물어봐요 ▶️ 검증 본능이 살아있어요. 아주 좋은 신호입니다
신호별로 이렇게 해보세요! 자녀 대응 가이드
🔴 빨간 불 상황이라면
원칙: 반박 대신 동참하기
“그거 틀렸어요”는 방어를 만들어요. “어, 나도 한번 찾아볼게요”가 훨씬 낫습니다.
AI가 그랬구나. 근데 AI는 아버지/어머니가 지금 드시는 다른 약들은 모르잖아요. 약사님한테 한번 여쭤봐요.
중요한 돈 관련 건 나한테 먼저 물어봐줘요. 같이 생각해볼게요.
이미 행동이 이뤄진 경우엔 사후 지적보다 “앞으로는 이런 거 결정하기 전에 먼저 얘기해줘요”로 방향을 돌리세요.
🟡 노란 불 상황이라면
원칙: 함께 AI가 틀리게 대답하는 걸 찾아보기
ChatGPT야, 세종대왕이 한글 만든 게 조선시대 말이지?
AI가 이상한 답을 하는 걸 같이 보면, “아, 이게 틀리기도 하는구나”가 설명이 아닌 기억으로 남아요. 가끔 부모님이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도 함께 봐주세요. “어디서 봤어요? 어떤 채널이에요?”라고 자연스럽게 물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 초록 불 — 지금이 기회예요
원칙: 부모님 스마트폰에 확실한 출처 저장해드리기
| 분야 | 믿을 수 있는 곳 |
|---|---|
| 건강·의료 | 질병관리청 건강정보 |
| 의약품 정보 | 의약품안전나라 |
| 법령·제도 | 국가법령정보센터 |
| 금융 사기 확인 | 금융소비자포털 파인 |
| 가짜뉴스 신고 | 한국언론진흥재단 |
오늘 저녁, 부모님께 AI 리터러시 챙겨드리세요
이상한 게 있으면 나한테 먼저 물어봐요.
부모님이 AI를 못 쓰게 막는 게 목표가 아니에요. 부모님 옆에 판단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그게 가장 강력한 AI 리터러시 교육입니다.
AI 시대에 우리 부모님을 지키는 건 결국 가족이에요. 자주 전화하고, 궁금한 게 생기면 나한테 먼저 물어보라고 말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FAQ
막을 필요 없어요. 번역, 요약, 모르는 것 찾기 등 어르신에게 실제로 도움되는 게 많아요. 목표는 “AI를 잘 도구로 쓰되,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하는 것”이에요.
아니에요. 수십 년간 형성된 신뢰 구조와 심리적 경향의 결과예요. 탓하기보다 이해하는 게 먼저예요.
2026년 BMJ Open 연구에서 AI 챗봇 의료 응답의 약 절반이 “문제 있음”으로 평가됐어요. 특히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에서 오류가 많았어요. AI는 참고용이지, 의사의 진단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어요.
일어난 일을 지적하기보다 다음을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이에요. “앞으로 이런 거 결정하기 전에 나한테 얘기해줘요”로 방향을 돌리세요. 관계를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해요.
“AI는 엄청 많은 책이랑 인터넷을 읽은 다음, 다음에 올 말을 예측하는 거야.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아니라서, 모를 때도 자신 있게 지어내기도 해.” 그다음 같이 틀린 전제로 질문해보면 금방 이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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