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을 전공한 7년차 지방공무원이 있습니다. 코딩을 배운 적도 없고, 생성형 AI를 처음 써본 게 2025년 말이에요. 이 사람이 5개월 만에 두 가지 현장 AI 혁신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공공기관 문서를 자동으로 분석하는 도구와, 대한민국 법률 1,600개와 행정규칙 1만 개를 AI가 검색할 수 있게 구조화한 시스템이에요.
국회의원은 “이것이 진짜 국가 AI 혁신”이라고 했고,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도 공식 혁신 사례로 소개했어요. 그런데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AI 해고, 성과 때문일까 기대감 때문일까
2026년 2월, 잭 도시(Jack Dorsey)의 핀테크 기업 블록(Block)이 전체 직원의 약 40%를 해고했습니다. AI가 관리 구조를 구식으로 만들었으니, 지금 줄여야 한다는 논리였어요. 주가는 올랐고, 시장은 박수를 보냈죠.
그런데 이 해고가 정말 ‘AI 성과’ 때문이었을까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 따르면, 실제 AI 구현에 기반한 해고는 전체의 2%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8%는 ‘곧 대체할 것이다’라는 기대만으로 사람을 내보내고 있는 거예요. 옥스퍼드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도 같은 결론을 냈어요. “기업들이 AI로 노동자를 대규모 대체하고 있다는 거시경제적 증거는 없다”. 실제로 2025년 미국에서 AI를 이유로 내세운 해고는 전체의 4.5%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과잉 채용 같은 나쁜 뉴스를 좋은 뉴스로 포장하려는 것”이라고요.
AI 혁신의 주역은 현장 직원이다
라파엘라 사둔(Raffaella Sadun)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블록 해고 사례를 다룬 더 애틀랜틱(The Atlantic) 기사에서 이렇게 경고했어요.
가장 유망하고 혁명적인 AI 앱은 경영진이 아니라 직원에게서 나올 것이다.
사둔 교수는 마이크로소프트 워크랩(WorkLab) 팟캐스트에서 AI 재교육이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정체성의 충격(identity shock)”이라고 표현했어요. “AI로 업무를 바꿔라”는 건 “당신이라는 직업인을 다시 만들라”는 요구라는 거죠.
직원을 대량 해고하면, 그들이 현장에서 쌓아온 업무 노하우도 함께 사라져요. 누가 어떤 문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시스템이 어디서 막히는지, 매뉴얼에는 없지만 일을 돌아가게 만드는 경험과 맥락. 이걸 ‘기관 지식(institutional knowledge)’이라고 부릅니다. 게다가 회사가 AI를 ‘사람을 대체할 경쟁자’로 내세우면, 남은 직원들이 AI를 적극 활용할 이유도 사라지고요.
사둔 교수만 이렇게 보는 게 아니에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다론 아체모글루(Daron Acemoglu), 데이비드 오터(David Autor),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MIT 교수는 NBER 공동논문에서 같은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AI를 사람 대신 쓰는 ‘자동화’에만 몰두하고 있지, 사람의 판단력을 키우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협력자’로 쓸 잠재력은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와튼스쿨의 에선 몰릭(Ethan Mollick) 교수도 블록 해고에 “50% 이상의 효율 향상이 갑자기 일어났다고 상상하기 어렵다”고 반응했어요. 몰릭 교수가 발견한 더 큰 문제는, 조직 내 가장 적극적인 AI 사용자들이 AI를 몰래 쓰고 있다는 겁니다. AI 정책이 불명확하니 괜히 쓰다 혼날까 두렵고, AI로 일을 잘하면 “그 자리 없어도 되겠네”라는 소리가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 오픈AI CEO 샘 올트먼까지 “일부 기업이 AI와 무관한 해고를 AI 탓으로 돌리는 AI-워싱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7년차 공무원이 만든 현장 AI 혁신 도구
잭 도시가 사람을 자르고 있던 바로 그 시기, 서울 광진구청 류승인 주무관은 도구를 만들고 있었어요. 7년차 일반행정직, 전공은 경영학. 생성형 AI를 처음 접한 건 2025년 말입니다.
문제는 단순했어요. 광진구 소식지 ‘아차산메아리’를 만들 때마다 HWP 원고만 200건이 넘었거든요. “문서 지옥이 싫었다.” 류 주무관의 표현이에요.
그래서 직접 만들었습니다. 코닥(Kordoc)은 HWP, HWPX, PDF 문서를 자동 분석해 텍스트를 추출하고, 여러 문서를 동시에 비교해 변경 내용만 추려내는 도구예요. 단순 변환이 아니라 공공 문서의 구조를 이해하고 재가공할 수 있게 설계했습니다.
두 번째 도구는 더 대담해요. 한국법 MCP는 대한민국 법령 체계를 AI가 직접 검색하고 호출할 수 있게 만든 시스템입니다. 현행 법률 1,600개 이상, 행정규칙 1만 개 이상,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까지 수십 개 기능으로 구조화했어요. 기존에는 법제처 사이트에서 법률, 시행령, 판례를 각각 검색해 수동으로 연결해야 했습니다. 이 도구는 그 과정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게 통합한 거예요.
경영학 전공자가 5개월 만에 만든 겁니다.
왜 전략실은 현장 AI 도구를 못 만들었을까
한국에는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있어요. 모든 공무원이 매일 HWP 문서와 법제처 사이트를 오가며 수작업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모른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정부 디지털 전환 추진단도, AI 전문 기업도 이 도구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이 도구를 만드는 데에는 ‘기관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HWP 별표 서식이 왜 텍스트 추출이 안 되는지, 법령 별지 문서의 표가 왜 깨지는지, 아차산메아리 200건의 원고를 매달 어떻게 정리하는지. 7년간 현장에서 문서와 씨름한 사람만 아는 고통이에요. C-레벨이 컨설팅 보고서를 읽고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2026년 3월, 한국 정부는 범정부 AI 공통기반 서비스를 전면 확대하고, 다층보안체계(MLS)를 가동해 정부 내부망에서도 민간 AI를 쓸 수 있게 했어요. 플랫폼을 깔고, 보안 체계를 세우는 건 정부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류승인 주무관이 만든 건, 그 플랫폼 위에서 돌아갈 ‘현장 도구’예요. 현장 도구는 현장에 있는 사람만 만들 수 있습니다.
국회는 극찬하고, 소속 기관은 “검토 중”
도구가 공개된 뒤, 반응은 두 갈래로 갈렸어요.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국가 AI 전환은 AI 챗봇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일상이 AI로 편리해지는 걸 의미한다”고 했고, CAIO 협의회에서 공식 혁신 사례로 소개됐습니다.
그런데 ZDNet 보도 시점에서 광진구청 측 반응은 이랬어요. “해당 공무원 존재는 인지하고 있으나 사실 관계는 확인 중”이다. 국회의원은 ‘혁신 사례’라고 부르는데, 소속 기관은 ‘대응 검토’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김경호 광진구청장이 “현장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행정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지원 의지를 밝혔지만, 초기 반응의 온도차는 기록할 가치가 있어요.
류 주무관이 깃허브에 신원을 밝히지 않은 것도, 기관 예산 없이 퇴근 후 직접 만든 것도, 몰릭 교수가 발견한 ‘AI를 몰래 쓰는 직원’ 현상과 같은 구조예요. ‘대응 검토’라는 네 글자는, 비슷한 시도를 해볼까 고민하던 공무원에게 “조용히 해라”는 신호로 읽힐 수 있어요.
AI 해고 기업의 35%가 다시 채용한 이유
블록으로 돌아가 볼게요. 해고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여러 조사가 같은 결론을 내고 있어요. 2026년 2월 커리어마인즈(Careerminds)가 AI 해고 기업의 HR 전문가 6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입니다. 35.6%는 해고한 직무의 절반 이상을 다시 채용했고, 그중 17.8%는 3개월 만에 사람을 다시 뽑았어요. 30.9%는 재고용 비용이 해고 절감액보다 더 커서 오히려 손해를 봤습니다. 가장 뼈아픈 건, HR 리더의 32.9%가 핵심 역량과 전문성을 잃었다고 답한 거예요. 앞서 설명한 기관 지식의 상실이 숫자로 확인된 셈입니다. “같은 구조조정을 변경 없이 반복하겠다”는 응답은 8.4%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2026년 3월 포춘(Fortune)의 CFO 서베이에서는 올해 AI 관련 감원이 작년의 9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해고가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데이터가 쌓이는데도 감원은 빨라지고 있어요. NBER 논문이 지적한 “뿌리 깊은 자동화 편향”, 즉 ‘AI는 곧 사람을 줄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경영 판단을 지배하고 있는 거예요.
현장 AI 혁신의 조건은 해고가 아니라 문화다
한쪽에서는 CEO가 직원 40%를 내보내고 시장의 박수를 받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현장 공무원이 퇴근 후 혼자 AI 도구를 만들고 국회의 극찬을 받아요. 같은 기술인데 접근이 정반대입니다.
AI 혁신의 핵심 자원은 코딩 실력이 아니라 기관 지식이에요. 류승인 주무관은 경영학 전공이고, 생성형 AI를 접한 지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NBER 논문의 용어를 빌리면, 류 주무관이 한 건 자동화가 아니라 ‘새로운 과업 창출(new task-creating)’이에요. HWP 문서 200건과 7년을 씨름한 경험, 법제처 사이트에서 법률과 판례를 매일 수작업으로 연결해본 사람만 느끼는 고통. 이런 현장 경험이 기관 지식이고, 이 지식은 사람을 자르면 사라져요.
AI 혁신이 현장에서 태어나려면, “도구를 만들어도 괜찮다”고 느끼는 문화가 먼저입니다. 국회에서 극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소속 기관이 “대응 검토” 대신 “어떻게 지원할까”를 먼저 묻는 조직이어야 합니다.
제2의 류승인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문서와 씨름하고 있을 거예요. 당신의 조직은 그 사람이 도구를 만들 수 있는 곳인가요?
FAQ
경영진이 AI 전략을 내려보내는 게 아니라, 현장 직원이 업무 문제를 직접 정의하고 AI 도구를 만들어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HWP, HWPX, PDF 문서를 자동 분석해 텍스트를 추출하고, 여러 문서를 동시에 비교해 변경 내용만 추려내는 공공 문서 처리 도구입니다.
현행 법률 1,600개 이상과 행정규칙 1만 개 이상을 AI가 직접 검색·호출할 수 있도록 구조화한 법령 검색 시스템입니다.
현장 직원을 해고하면 기관 지식이 사라지고, 남은 직원의 AI 활용 동기도 꺾립니다. 실제로 해고 기업의 35.6%가 같은 직무를 다시 채용했어요.
아니에요. 경영학 전공 일반행정직 공무원으로, 생성형 AI를 처음 쓴 건 2025년 말입니다.
매뉴얼에는 없지만 일을 돌아가게 만드는 현장 업무 노하우입니다. 직원을 해고하면 이 지식도 함께 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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