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드나 엑스(X)에서 ‘AI 좀 쓴다는 사람들’의 타임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요즘 자주 부딪히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하이 에이전시(High Agency).
누군가는 이렇게 씁니다. “재능보다 하이 에이전시다.” “환경 탓하지 말고 그냥 해라.” “AI 시대에 살아남는 사람의 단 하나의 조건.” 짧은 카드 한 장, 굵은 글씨 한 줄로 정리된 성공 공식이죠. 보고 있으면 마음이 살짝 급해져요. 나만 이 태도가 없어서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기분.
그런데 이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한 가지가 걸렸습니다. 이 단어, 정말 우리한테 “이렇게 하라”고 만들어진 말일까요? 출처를 따라가 봤더니, 정작 이 말이 태어난 동네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삼킨 하이 에이전시: ‘하라’는 명령
하이 에이전시라는 말이 또렷한 모양을 갖춘 건 2016년입니다. 수학자이자 피터 틸의 투자사 임원을 지낸 에릭 와인스타인(Eric Weinstein)이 팟캐스트 ‘팀 페리스 쇼’에서 이렇게 설명했어요.
누가 당신에게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했을 때, 거기서 대화가 끝나느냐, 아니면 머릿속에서 “그럼 어떻게 돌아가지?”라는 두 번째 대화가 시작되느냐.
후자가 하이 에이전시라는 거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와이콤비네이터의 폴 그레이엄이 2009년에 좋은 창업자를 “지독하게 수단을 찾아내는(relentlessly resourceful)” 사람이라 부른 계보와 닿아 있습니다.
핵심은 단순합니다.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지 마라. 상황을 탓하지 마라.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끝까지 밀어붙여 결과를 만들어라.
처음엔 업계 안에서만 쓰이던 은어에 가까웠어요. 2020년 제품 책임자 슈레야스 도시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하는 사람 vs 환경을 탓하는 사람”으로 정리하면서 창업·실무자 커뮤니티의 언어가 됐고요.
분위기가 확 바뀐 건 2024~2025년입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이 단어 언급량이 1년 새 다섯 배로 뛰었고, 2025년 초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걸 “실리콘밸리의 새 핫워드”로 다뤘습니다. 링크드인 채용 공고에 “하이 에이전시 인재 구함”이 붙기 시작했고, 조지 맥(George Mack)의 「High Agency in 30 Minutes」 같은 에세이가 자기계발 콘텐츠로 퍼졌죠. 문제 해결 태도였던 말이, 사람을 거르는 채용 필터이자 성공한 사람의 정체성 표지로 바뀐 겁니다.
한국에 들어온 건 바로 이 마지막 버전입니다. 2016년의 조용한 정의가 아니라, 2025년의 ‘핫워드’ 버전이죠. 이 말은 거의 그대로 자기계발과 리더십의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주도성”, “실행력”, “핑계 없음” 같은 익숙한 단어로 옷을 갈아입었어요.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정서가 따라붙었습니다. 바로 불안입니다. 안 하면 뒤처진다, 못 따라가면 도태된다. AI가 일을 빠르게 집어삼키는 시대라는 배경이 깔리니까, “하이 에이전시 하라”는 말은 조언이 아니라 거의 생존 지시처럼 들립니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풍경입니다. 좋은 태도를 권하는 말, 나쁠 게 없어 보이죠. 그런데 같은 시기, 이 단어가 태어난 곳에서는 정반대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실리콘밸리는 하이 에이전시를 정반대로 읽었다
2026년 4월, 뉴욕타임스에 칼럼 하나가 실렸습니다. 제목이 “세상에서 제일 별로인 사람들이 죄다 ‘하이 에이전시’가 되고 싶어 한다”였어요. 만우절에 나왔지만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글쓴이 소피 하이그니(Sophie Haigney)의 비판은 이렇습니다. 에이전시(agency), 즉 주체성이라는 게 어떤 가치체계와도 연결되지 않은 채 그 자체로 떠받들어지는 게 무섭다는 거예요. 무엇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행동하느냐는 빠진 채로 ‘그냥 행동하는 능력’만 숭배될 때, 그건 위험 감수가 과대평가된 도박꾼의 시대 윤리에 가깝다는 거죠.
비슷한 시기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의 찰리 워젤(Charlie Warzel)은 더 깊은 자리를 건드렸습니다. “AI가 주체성의 위기를 부르고 있다”는 글에서, 그는 하이 에이전시 담론이 사실은 불안 위에 서 있다고 봤어요.
워젤의 설명을 따라가 볼게요. 지금 우리는 AI 앞에서 점점 수동적인 자리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AI 업계는 이걸 ‘루프 속 인간(human-in-the-loop)’이라고 부르는데, 말은 능동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 인간이 하는 일은 기계가 내놓은 걸 확인하고, 승인하고, 고치는 관리자 역할에 가깝습니다. 프롬프트를 넣고, 스크롤하고, 기다리는 거죠.
이런 시대에 “하이 에이전시를 가진 사람은 적어도 아직은 대체되지 않는다”는 말은 묘한 위안을 줍니다. 그리고 그 위안의 반대편엔 실리콘밸리에서 쓰는 또 다른 표현이 있습니다. ‘영구 하층계급(permanent underclass)’ 뒤늦게 쫓아오려다 밀려난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죠.
하이 에이전시를 가진 사람은 적어도 지금은, 이 불안정한 시대에 대체되거나 쓸모없어지는 일에서 비켜나 있다고 여겨진다. 아직은 ‘영구 하층계급’, 곧 뒤처질 뒤늦은 적응자들의 무리에 들지 않았다고 말이다. 이런 언어를 듣고 조금이라도 불안해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디 애틀랜틱, 찰리 워젤, 2026
그러니까 실리콘밸리에서 하이 에이전시는 ‘되면 좋은 태도’가 아니라, ‘안 되면 하층계급’이라는 위협을 깔고 선 엘리트의 자기 서사로 읽히고 있었어요. 한국이 성공 공식으로 베껴 온 그 말을, 본토에서는 경계해야 할 시대의 징후로 해부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이 에이전시가 번역되며 잘려 나간 경고
문제는 시차가 아닙니다. 그 경고가 한국어로 옮겨지는 동안, 정작 핵심이 조용히 잘려 나갔다는 데 있어요.
원래 이 담론에 붙어 있던 경고, 그러니까 “주체성이 가치와 분리되면 위험하다”거나 “이 말은 계급 서사 위에 서 있다”는 부분은 한국어 번역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남은 건 “그러니 너도 주도적으로 살아라”라는 깔끔한 개인 책임 서사뿐이죠. 비판받아야 할 프레임을, 우리는 따라야 할 생존법으로 오독한 셈입니다.
이게 왜 문제일까요? 한국은 이미 각자도생과 자기계발 압박이 센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남들 다 하는 ‘이게’ 없으면 도태된다”는 메시지는 이런 토양에서 더 매끄럽게 안착해요. 고용 구조, 교육, 플랫폼이 쥔 권력 같은 진짜 배경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네 태도가 문제”라는 결론만 또렷하게 남습니다.
여기에 워젤이 글에서 짚은 역설이 있습니다. 정작 AI 에이전트가 퍼질수록, 우리가 실제로 행사하는 주체성, 그러니까 선택하고 통제하고 이해하는 힘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거예요. 무엇을 볼지는 알고리즘이 고르고, 답은 챗봇이 정리해 주니까요.
그런데 담론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더 자기주도적으로 일하라”, “환경 탓 하지 마라”, “더 노력하라”. 개인에게 더 많은 주도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정작 개인의 주도성이 깎여 나가는 바로 그 시점에 가장 커지는 겁니다.
그러면 이 말로 누가 이득을 볼까요. 태도를 파는 쪽입니다. 강연, 카드뉴스, 부트캠프, 뉴스레터. 누가 안 보이게 될까요. “그런 태도를 못 가진 건 네 탓”이라는 말에 짓눌리는 다수입니다.
그래서 하이 에이전시, 무엇을 물어야 하나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도적으로 사는 게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스스로 문제를 풀고 끝까지 해보는 태도는, 당연히 좋습니다.
다만 그 말이 카드 한 장, 포스트 한 개에 담겨 “안 하면 도태된다”는 문장과 함께 날아올 때, 우리가 먼저 던질 질문이 바뀌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하이 에이전시한 사람이 되지?”가 아니라, “왜 지금, 누가, 나에게 이 말을 팔고 있지?”
다음에 타임라인에서 그 단어를 또 만나거든, 딱 한 가지만 구분해 보세요. 이건 나에게 도움을 주는 정보인가, 아니면 불안을 파는 위협인가. 그 둘을 갈라 읽을 수 있다면, 그게 어쩌면 진짜 하이 에이전시일지도 모릅니다.
FAQ
완벽한 조건이나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풀어 성과를 내는 태도를 말합니다. 2016년 에릭 와인스타인이 팀 페리스 쇼에서 쓰면서 퍼진 실리콘밸리 용어입니다.
2016년 에릭 와인스타인의 발언이 가장 많이 인용되는 기원이고, 2009년 폴 그레이엄의 “relentlessly resourceful”이 그 선조 격입니다.
뉴욕타임스와 디 애틀랜틱은 이 담론을 가치와 분리된 채 숭배되는 엘리트의 자기 서사라고 비판합니다.
한국은 비판 맥락을 떼고 자기계발 생존법으로만 받아들였습니다. “네 태도가 문제”라는 개인 책임 서사로 좁혀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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