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AI로 직원을 평가하고, 공공기관은 AI로 지원자를 면접하고, 제조 현장에서는 AI 로봇이 노동자를 지켜봅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미 우리 일터에 들어와 있는 장면들이죠.
그리고 2026년 6월 9일, 정부가 처음으로 이 장면들을 정면으로 세기 시작했습니다.
AI 노동인권 실태조사, 노동자 1,750명 역대 최대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동자 1,750명을 대상으로 한 ‘AI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착수했어요. 일하는시민연구소가 인권위 용역을 받아 진행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AI에 따른 노동조건과 차별, 건강 같은 노동인권을 다층적으로 조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설계를 보면 폭이 넓어요. 노동자 1,250명과 노사 관계자 500여 명, 모두 1,750명을 설문하고, 금속과 금융 등 12개 업종, 웹툰과 운송·배달 등 10개 직종을 심층 면접합니다.
여기엔 배달앱과 콜센터, IT처럼 알고리즘 통제에 가장 직접 노출된 플랫폼 노동자도 들어가요. 연구팀은 이걸로 AI 노출도와 일자리 대체 위험을 분석하는 한편, 채용과 평가, 배치, 해고 과정에서의 차별 가능성까지 함께 들여다본다고 합니다.
공공부문 340곳은 한 발 더 나간다고 해요. 인권위가 만든 ‘AI 인권영향평가’ 도구를 실제 현장에 적용한다는 겁니다. 인권위는 2022년 ‘AI 개발과 활용에 관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국무총리 등에 권고했고, 2024년에는 4단계 72개 문항으로 짜인 ‘AI 인권영향평가’ 도구를 내놨어요. 문서로만 있던 그 도구가, 처음으로 현장 검증에 투입되는 셈이죠.
조사는 9월로도 이어집니다. 연구팀은 온라인 ‘AI 노동 관측소’를 열어 AI 도입 사례와 인권 침해 제보를 상시 모을 계획이에요.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어요.
기존 연구들이 고용 지표와 경제적 영향에 집중했다면, 이번 조사는 일터에 침투한 기술이 노동자의 권리와 사생활을 어떻게 제약하는지 들여다보는 인권 중심의 첫 접근이다.
AI 노동인권은 왜 ‘숫자 바깥’에 있었나
김 소장의 그 한마디에 이 조사의 핵심이 들어 있어요. “고용 지표에 집중했다”는 말이요.
지금까지 AI와 노동을 둘러싼 이야기는 대체로 셀 수 있는 것에 묶여 있었습니다. 일자리 수죠. 에이릿이 「신입이 사라지고 있다」에서 따라간 것도 결국 사라지는 자리의 개수였어요. 고용 지표는 숫자로 잡히니까, 자연히 논쟁의 한복판에 섰습니다.
그런데 정작 노동자의 권리를 갉아먹는 것들은 그 숫자 바깥에 있었어요. 그런 것들은 잘 세어지지 않습니다.
차별이 그래요. 에이릿은 「알고리즘 편향: 차별의 그림자와 한국의 현실」에서, 미국은 AI 채용 차별 소송이 잇따르는데 한국은 단 한 건도 없는 이유를 짚었어요. 차별이 없어서가 아니라, 차별을 정의하고 입증할 도구가 없어서였죠. 그래서 한국에서 AI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위장된 해고 사유도 그래요. 에이릿이 「AI워싱: 당신의 해고는 정말 AI 때문인가」에서 전한 뉴욕주 사례가 선명합니다. 해고 통지서에 ‘AI나 자동화 때문인가’라는 체크칸 하나를 더했더니, 1년간 162개 기업 가운데 단 한 곳도 체크하지 않았어요.
강제 항목이 아니어서 체크는 0이었지만, 바로 그 0이 많은 걸 말해줍니다. 대외적으로는 ‘AI 효율화’를 내세우던 기업들이, 정작 법적 책임이 따르는 서류에서는 ‘AI 때문’이라고 적지 못한 거니까요. 자발적인 칸 하나에도 홍보와 진실의 틈은 드러난 셈이죠.
감시는 더 빠르게 번지고 있고요. 에이릿이 「잘린 사람은 예산이 됐고, 남은 사람은 데이터가 됐다」에서 기록한 메타 사례에서, 한 노동법 교수는 이렇게 말했어요. 배달 기사 같은 특수노동자에게만 적용되던 감시가, 이제 사무직 노동으로 확장되고 있다고요.
차별과 위장, 감시. 이 셋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숫자로 잡히지 않으면 규제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뉴욕의 체크칸이 자발적이라 비어버린 ‘약한 측정’이었다면, 인권위 조사는 노동자 1,750명을 직접 설문하고 공공기관 340곳에 영향평가 도구를 들이대는 ‘강한 측정’이에요. 이번 조사가 진짜 새로운 건 규모가 아니라 여기에 있어요. 그동안 세어지지 않던 이 셋을 처음으로, 그것도 제대로 세겠다고 나선 거니까요. 무엇을 세느냐가, 결국 무엇을 규율할 수 있느냐를 정합니다.
다시, 세 장면으로
처음의 세 장면으로 돌아가 볼게요. 은행의 AI 인사평가, 공공기관의 AI 면접, 공장의 AI 로봇. 그동안 이 장면들은 주로 ‘효율’의 언어로 셈해졌습니다. 더 빠르게, 더 적은 인원으로, 더 객관적으로. 이제 처음으로 다른 칸에서 세어져요. ‘인권’이라는 칸에서요.
물론 조사 하나로 법이 바뀌지는 않아요. 김 소장 말처럼, 축적된 데이터가 입법과 정부 가이드라인의 기초자료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죠. 그래도 누군가 처음으로 세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큽니다. 세어지지 않으면 규제되지 않고, 규제되지 않으면 보호받지 못하니까요. 9월 ‘AI 노동 관측소’가 채우려는 게 바로 그 빈칸이에요. 그동안 아무도 세지 않아서 비어 있던 자리요.
무엇을 세느냐가, 결국 무엇을 규율할 수 있느냐를 정합니다. 그러니 이 첫 헤아림이 거기서 멈추지 않기를 바라요. 알고리즘에 가장 촘촘하게 통제당하면서도 정작 보호 바깥에 놓인 사람들, 숫자로 좀처럼 잡히지 않아 늘 ‘숫자 바깥’으로 밀려나던 권리들에까지, 인권위의 이 조사가 끝내 가닿을 수 있기를요.
FAQ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동자 1,7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조사예요. 일하는시민연구소가 용역을 받아, AI가 노동조건·차별·건강 등 노동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다층적으로 살핍니다. 정부 차원의 다층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노동자 1,250명과 노사 관계자 500여 명입니다. 금속·금융 등 12개 업종과 웹툰·운송·배달 등 10개 직종을 심층 면접하며, 배달앱·콜센터·IT 등 플랫폼 노동자도 포함돼요.
인권위가 2024년 발표한 4단계 72개 문항의 평가 도구로, AI의 인권 침해 위험을 사전에 점검합니다. 이번 조사에서 공공부문 340곳에 처음으로 실제 적용돼요.
기존 연구가 일자리 수 같은 고용 지표에 집중했다면, 이번 조사는 알고리즘에 의한 차별·감시·통제처럼 그동안 측정되지 않던 노동인권 문제를 데이터로 잡으려는 첫 시도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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