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3일, 미국 브라운대학교 캠퍼스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2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경제학과 로베르토 세라노(Roberto Serrano) 교수의 제자 두 명도 부상자 명단에 있었고, 희생자 중 한 명인 엘라 쿡(Ella Cooke)은 사건 불과 며칠 전 그를 찾아와 지도교수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던 학생이었다.
참사 이후 학생들이 강의실에 모이는 것조차 극심한 공포를 느끼자, 세라노 교수는 34년 교직 생활 중 처음으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재택 시험(Take-home exam)’으로 전환했다.
이후 2026년 3월 5일에 치러진 중간고사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수강생 86명 중 무려 40명이 100점 만점을 받았고, 전체 평균은 96점에 달했다. 이 과목의 역대 평균 점수는 보통 65~80점 사이였다.
세라노 교수와 채점 조교들이 시험 문제를 챗GPT(ChatGPT)에 직접 입력해 보았다. 그러자 상당수 학생의 답안에서 챗GPT 특유의 “이상하리만치 장황한” 논증 방식과 문장 구조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되는 것이 확인됐다.
세라노 교수는 즉시 경고장을 날렸다. 기말고사는 다시 ‘대면 시험’으로 치르며, 만약 두 시험의 성적 분포가 크게 다를 경우 중간고사 성적을 무효로 하겠다는 조건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기말고사를 앞두고 86명 중 18명이 과목을 중도 포기(Drop)했고, 9명은 등록만 유지한 채 시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59명만 시험을 치렀는데, 이 중 22명은 중간고사에서 만점을 받았던 이들이었다. 대면으로 치러진 기말고사의 평균 점수는 48.6점. 이 과목 역사상 최저치였으며, 시험을 치른 학생의 3분의 1에 달하는 19명이 결국 낙제(F학점)했다.
“부정행위의 비용이 0이 됐다”
세라노 교수는 게임이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브라운대 ‘해리슨 S. 크래비스(Harrison S. Kravis)’ 석좌교수이자 학술지 게임과 경제행동(Games and Economic Behavior)의 편집위원이며, 2024년에는 스페인 최우수 경제학자에게 수여되는 최고 권위의 ‘레이 하이메 1세(Rey Jaime I)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진단한 키워드는 도덕이나 윤리가 아닌, 철저한 ‘경제학의 관점’이였다.
“이런 일은 제 평생 처음입니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부정행위에 드는 ‘비용’이 사실상 0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유혹에 빠지기 너무나 쉬운 환경이 설계된 것입니다.”
이 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진단에 따라 처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도덕성이 타락했다”는 진단은 훈계와 처벌로 이어지지만, “부정행위의 가격(비용)이 변했다”는 진단은 ‘게임의 규칙과 인센티브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해결책으로 귀결된다. 게임이론가인 세라노 교수가 강조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면 도덕적 호소가 아니라, 부정행위에 반드시 합당한 대가가 따르도록 유인(Incentive) 구조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 사례가 특별한 증거일까?
대학가에서 AI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만연하다는 통계는 이미 차고 넘친다. 영국의 리딩대학교(University of Reading) 연구팀은 AI가 작성한 시험 답안 100개를 채점자 모르게 섞어 제출했을 때 무려 94%가 적발되지 않고 통과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으며, 프린스턴대학교는 133년간 지켜온 무감독 시험 전통인 ‘아너 코드(Honor Code)’를 지난 5월 폐지했다.
그러나 브라운대의 사례가 특별한 이유는 ‘완벽하게 통제된 실험 조건’에 있다.
비교군을 찾기 위해 서로 다른 학생 집단을 조사할 필요가 없다. 동일한 학기, 동일한 교수, 동일한 난이도의 과목을 듣는 같은 학생 86명을 대상으로 오직 ‘시험 방식(재택 vs 대면)’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만 바꾸었기 때문이다.
대학의 반응은 왜 “미온적”이었나
세라노 교수는 지난 5월 이 데이터를 대학 학사규정위원회에 제출했으나 아무런 공식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6월 말 스페인 매체 엘파이스(El País)를 통해 이 사실을 폭로한 뒤에야 학과장으로부터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학생들의 개별 신고서를 일일이 작성해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세라노 교수는 수십 명의 부정행위 혐의를 교수가 일일이 직접 입증하라는 것은 “관료주의적 장벽이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라며 반발했다.
대학 측의 입장도 팽팽하다. 브라운대 대변인 브라이언 클라크(Brian Clark)는 인사이드 하이어 에드(Inside Higher Ed) 인터뷰를 통해 “학사 성실성 위반 의혹은 예외 없이 엄격한 절차에 따라 다루어지며, 여러 담당자가 세라노 교수와 소통해 왔다”고 해명했다. 다만 “공식적인 사건 처리를 위해 교수가 제출해야 할 구체적인 세부 자료(Evidence)를 아직 제출하지 않은 상태”라며 절차적 한계를 지적했다.
대학 본부의 관료적 대처와 별개로, 내부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같은 시기 발표된 브라운대 생성형 AI 교육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교수진 중 75%가 AI 부정행위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대학협회(AAC&U)의 전국 조사 결과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평가의 규칙이 바뀐다
세라노 교수는 다가오는 학기부터 자신의 강의에서 ‘재택 시험’을 전면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매주 제출하던 주간 과제 역시 성적 평가 요소에서 제외할 예정이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몇 초 만에 끝낼 수 있는 과제에 점수를 매기는 것 자체가 평가로서의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평가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 계산법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감시와 처벌을 늘릴 수 없다면, 대학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다시 설계해야 할까.
지식의 습득을 평가하던 시대는 가고, 평가의 ‘인센티브 구조’를 재설계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FAQ
본인 추산으로 약 50명이다.
무효 처리됐고, 기말고사가 성적의 80%를 차지하도록 재조정됐다. 낙제 기준도 50점에서 40점으로 낮췄지만 그럼에도 19명이 낙제했다.
아니다. 프린스턴대는 133년 만에 무감독 시험 전통을 폐지했고, 최근 하버드 졸업반 설문에서는 47%가 부정행위를 인정했다.
세라노 교수는 회의적이다. 그는 “AI 탐지 도구는 오탐과 미탐이 많기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브라운대는 학사규정 개정 검토에 들어갔고, 대변인은 모든 의혹을 동일한 절차로 다루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세라노 교수는 행정 대응이 “미온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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