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아이브의 러브프롬(Lovefrom)은 2026년 현재 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하나는 물리 조작 시스템을 강조한 페라리 루체(시작가격 55만 유로), 하나는 스크린을 최소화한 오픈AI의 AI 기기(코드명 Sweetpea·Gumdrop, 2027년 초 출시 예정, 초기 생산 목표 1억 대로 보도)다. 겉으로는 방향이 달라 보이지만, 두 프로젝트 모두 기술이 사람의 경험을 압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아이브의 오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다만 그 문제의식이 실제 제품에서 어떤 형태로 구현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2026년 5월 26일, 이탈리아 로마. 페라리가 브랜드 최초 순수 전기차 루체(Luce)를 공개했다. 언론은 1,050마력, 122kWh 배터리, 제로백 2.5초라는 기술 스펙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 차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성능 수치만이 아니다. 발표와 보도에서 ‘AI’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고, 대형 터치스크린 중심 구성도 택하지 않았다(내비를 보는 작은 스크린은 있다). 대신 금속을 정밀 가공한 노브와 토글, 물리 버튼이 대시보드의 중심에 놓였다. 테슬라가 자동차 인터페이스 기준을 스크린 중심으로 바꾼 뒤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 페라리는 다른 해석을 제시한 셈이다. 이 차의 디자인에 조니 아이브가 참여했다는 점도 관심을 모았다.
조니 아이브가 심혈을 기울이는 제품은 페라리 말고도 또 있다. 러브프롬은 페라리처럼 스크린이 아예 없는 또 다른 AI 기기를 오픈AI와 만들고 있다. 이 기기는 항상 켜져 있고, 말을 걸지 않아도 듣고 본다. 작고 가벼워 신체에 착용하기 쉬울 것 같다. 페라리 루체와는 스크린이 없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그 나머지는 다 정반대인 제품이다.
러브프롬은 어떻게 만들어진 회사인가
조니 아이브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이폰, 아이팟, 아이맥, 애플워치. 그는 1992년 애플에 들어가 27년간 최고디자인책임자(CDO)로 일했다. 그 시간 동안 그가 만든 물건들이 전 세계 사람들 손과 책상과 귀와 손목 위에 올라갔다. 2019년 그가 애플을 떠났을 때, 애플 주가는 하루 만에 수십억 달러 규모가 증발했다. 그만큼 그의 존재감이 컸다는 뜻이기도 하고 시장이 그의 퇴장을 얼마나 불안하게 읽었는지 보여주는 숫자이기도 하다.
그가 새로 차린 회사 이름은 러브프롬이다. 이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브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 이야기를 꺼냈다. 직원 회의에서 잡스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당신이 만드는 물건을 쓰게 될 사람들은 아마 당신을 평생 직접 만나지도 못할 것이고, 악수할 일도 없을 거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정성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 그것이 인류에게 우리가 느끼는 감사를 표현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이 말은 결국 못 만날 사람들한테까지 신경 써서 만들겠다는 그 마음이, 세상에 대한 감사라는 얘기다. 아이브는 그 말에서 자신이 일하는 이유를 찾았다. 새 회사 이름이 러브프롬이 된 것은 그래서였다.
잡스가 죽고 팀 쿡이 CEO가 된 뒤 애플은 달라졌다. 트립 미클의 책1을 바탕으로 한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아이브는 애플이 디자인 중심 회사에서 실용 중심 회사로 바뀌는 것을 보며 수년간 속을 끓였고 결국 나오기로 했다. 그 속앓이가 무엇이었는지는 러브프롬이 이후 무엇을 했는지를 보면 드러난다.
샌프란시스코에 자리잡은 러브프롬은 애플, 에어비앤비, 페라리, 몽클레어 같은 브랜드와 일해왔다. 설립 직후 애플이 첫 번째 고객으로 계약했고 2022년까지 협업이 이어졌다. 자동차 회사, 숙박 플랫폼, 명품 아웃도어, 영국 찰스 3세 대관식 문장까지 러브프롬은 제품 디자인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일들을 해왔다.
페라리 루체에서 러브프롬은 무엇을 설계했나
그렇다면 러브프롬은 루체에서 정확히 무엇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순히 외관 몇 줄을 다듬은 수준이 아니라 차의 바깥(비율, 표면, 디테일)과 안(소재, 조형, 조작계) 그리고 운전자가 맞닥뜨리는 인터페이스(정보 구조, 조작 흐름)를 전부 맡았다. 다시 말해 루체에서 이용자가 만지는 노브의 감각부터 버튼의 배치, 시선이 머무는 정보의 질서까지를 같은 디자인 철학으로 통일했다는 뜻이다. 공개된 정보 기준으로만 봐도 이 작업이 대략 5년에 걸쳐 진행됐다고 알려졌다.

루체의 핵심 선택은 빼는 것이었다. 러브프롬은 터치스크린 중심인 지금 전기차 흐름에 맞서 금속 가공 노브, 토글, 팬 컨트롤 같은 물리 버튼을 앞세웠다. 버튼을 누를 때 손가락에 전달되는 무게와 저항, 그것도 설계의 일부다. 누른다는 행위가 운전자에게 ‘내가 이 차를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준다. 화면을 터치하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다.
이것이 그저 취향 문제인가. 테슬라가 모델 S를 내놓으며 17인치 대형 터치스크린을 자동차 한가운데 놓은 것은 2012년이었다.2 이후 많은 전기차 브랜드가 그 방식을 따랐다. 아이브가 루체에서 물리 버튼을 강조한 선택은 스크린 중심 인터페이스가 표준처럼 굳어지는 흐름 속에서 다른 이용자 경험을 제안하는 시도로 읽힌다. 기술이 사람의 감각과 주의를 과도하게 점유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같은 문제의식이 스크린을 줄이는 방향으로도 스크린을 없애는 방향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오픈AI 스위트피는 어떤 물건인가
2025년 오픈AI는 아이브가 공동으로 창업한 스타트업 io를 약 65억 달러에 인수했고, 동시에 아이브의 디자인 스튜디오 러브프롬(LoveFrom)이 오픈AI의 전반적 크리에이티브를 맡게 됐다.3 이 구도에서 io는 소비자 기기 프로젝트의 제품/개발 조직에 가깝고, 러브프롬은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총괄 역할을 맡는 파트너로 이해된다. 샘 올트먼과 아이브는 이 일을 “스크린 너머로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오픈AI의 AI 기기 내용은 대충 이렇다. 공식 제품명은 아직 없다. 유출된 코드명은 두 개다. 귀 뒤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형태의 스위트피(Sweetpea)와 펜 형태의 검드롭(Gumdrop). 두 기기가 별도 제품인지 같은 제품의 다른 형태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공통점은 하나다. 스크린이 없고 트리거 워드(알렉사, 아리아, 헤이구글 등) 없이 항상 켜진 채로 주변을 듣고 본다.4
얼굴 인식 기능이 있고 이용자를 학습해 목표에 맞는 행동을 제안한다. 아침 일찍 회의가 있으면 전날 밤 일찍 자라고 권하는 식이다. 오픈AI는 초기 생산 목표를 1억 대로 잡았으며, 출시는 2027년 초로 예상된다.5
알트먼은 이 기기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풍경으로 설명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장에서 고요히 앉아 있는 것.” 그게 이 기기의 느낌이라고. 아이브 본인은 스크린을 없앤 이유를 직접 “이전 소비자 기기의 단점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밝혔으며 특히 스마트폰 중독을 지목했다. 페라리 루체와 오픈AI 스위트피. 하나는 촉각을 복원한 자동차, 하나는 촉각 자체를 없앤 AI 기기. 모순처럼 보이는 이 두 선택이 실은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두 프로젝트는 왜 같은 철학에서 나왔나
아이브는 두 프로젝트의 방향을 직접 설명한 적이 있다. 페라리에서는 “단순함과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말했고, 오픈AI 기기에서는 “이전 소비자 기기의 단점, 특히 스마트폰 중독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다.6 다른 맥락에서 나온 말이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기술이 경험의 중심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 질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95년 컴퓨터 과학자 마크 와이저(Mark Weiser)와 존 실리 브라운(John Seely Brown)은 제록스 PARC에서 “차분한 기술(Calm Technology)”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7 가장 좋은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기술이 사람 경험의 중심이 아니라 배경에 머물 때, 사람은 기술에 끌려다니지 않고 기술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브가 이 개념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가 두 프로젝트에서 내린 선택들은 와이저와 브라운이 30년 전에 던진 질문과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루체에서 물리 버튼은 운전자 시선을 화면에서 정면으로 돌려 놓는다. 운전이라는 행위의 중심을 다시 사람에게 돌려주려는 설계다. 오픈AI 스위트피가 지향하는 스크린 없는 방식 역시, 인터페이스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이용자의 행동으로 조용히 들어가려는 시도다. 두 접근은 형태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기술이 경험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하자는 질문을 던진다.
AI가 우리 일상에서 차지하는 형태
러브프롬의 두 프로젝트는 AI가 우리 일상에 들어오는 형태가 아직 고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페라리 루체는 가격과 브랜드가 상징하는 바가 크지만 누구에게나 손에 잡히는 제품은 아니다. 반면 스크린리스(또는 스크린을 최소화한) AI 기기 구상은 성공한다면 더 넓은 일상으로 확산될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스크린이 있냐 없냐가 아니라 AI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주의, 선택, 데이터를 다루게 되느냐다. 지금은 대체로 내가 스마트폰을 꺼내 앱을 열어야 상호작용이 시작된다. 하지만 상시 동작을 전제로 한 기기는 이용자가 의식적으로 접속하지 않는 순간에도 상호작용 할 수 있다.
아이브가 반복해온 디자인 철학은 여기서 하나의 기준점을 준다. 기술은 더 강해질수록 앞으로 나오기 쉽지만 이용자의 경험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오히려 더 조용하고, 더 절제된 형태를 고민해야 한다. AI 시대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을 더 넣을 것인가 뿐만이 아니라 무엇을 빼야 사람이 더 잘 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FAQ
러브프롬은 조니 아이브가 2019년 애플을 떠난 뒤 설립한 디자인 집단이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고 60명 규모로 운영되며, 애플, 에어비앤비, 페라리, OpenAI 등 글로벌 기업과 일한다. 제품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고 브랜드 정체성과 인터페이스 전반을 다룬다.
2025년 오픈AI가 아이브의 스타트업 io를 65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아이브의 디자인 회사 러브프롬이 오픈AI 전체 크리에이티브를 맡게 됐다. 아이브는 이 프로젝트를 “이전 소비자 기기의 단점, 특히 스마트폰 중독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식 출시는 2027년 초로 예상되며, 초기 생산 목표는 1억 대다. 공식 이름은 아직 없다. 유출된 코드명은 귀 뒤 착용형 스위트피(Sweetpea)와 펜 형태 검드롭(Gumdrop) 두 가지다. 공통 설계 방향은 스크린 없이 항상 켜진 채로 주변을 듣고 보는 것이다. 얼굴 인식으로 이용자를 학습하고, 목표에 맞는 행동을 제안한다.
루체의 외관, 실내, 인터페이스 전체를 러브프롬이 설계했다. 5년에 걸친 작업이었다. 핵심 선택은 터치스크린 대신 금속 가공 물리 버튼을 앞세운 것이다. 테슬라가 2012년 확립한 대형 터치스크린 중심 인터페이스에 반기를 든 설계다.
1995년 마크 와이저와 존 실리 브라운이 제록스 PARC에서 제안한 개념이다. 가장 좋은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기술이 사람 경험의 중심이 아니라 배경에 머물 때 사람이 기술에 끌려다니지 않고 기술을 쓸 수 있다는 원칙이다. 아이브가 이 개념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이 글에서는 러브프롬의 두 프로젝트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설명하는 참조 틀로 사용했다.
- 트립 미클, 《After Steve: How Apple Became a Trillion-Dollar Company and Lost Its Soul》, HarperBusiness, 2022. ↩︎
- Green Car Reports, “What’s On A 2012 Tesla Model S Screen Display?”, 2012-06-21. https://www.greencarreports.com/news/1077135 ↩︎
- TechCrunch, “Jony Ive to lead OpenAI’s design work following $6.5B acquisition”, 2025-05-21. https://techcrunch.com/2025/05/21/jony-ive-to-lead-openais-design-work-following-6-5b-acquisition-of-his-company ↩︎
- MacRumors, “Jony Ive’s First OpenAI Device Will Be Smart Speaker With Camera, 2027 Launch Planned”, 2026-02-20. https://www.macrumors.com/2026/02/20/jony-ive-openai-smart-speaker-2027/ ↩︎
- Built In, “OpenAI’s New Device: What We Know So Far”, 2026. https://builtin.com/articles/openai-device ↩︎
- Introl, “OpenAI Consumer Device: Jony Ive’s Screenless AI Hardware”, 2026-01-23. https://introl.com/blog/openai-consumer-device-jony-ive-hardware-2026 ↩︎
- Mark Weiser and John Seely Brown, “Designing Calm Technology”, Xerox PARC, 1995. https://calmtech.com/pap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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