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5일, 교황 레오 14세가 취임 후 첫 회칙을 냈다. 제목은 Magnifica Humanitas. AI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는 선언이었다. 엿새 뒤, MIT 경제학자이자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세모글루가 국제 오피니언 미디어 Project Syndicate에 응답했다. 제목은 “The Pope Should Have Gone Further on AI” 교황이 충분히 나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세모글루의 진단은 이랬다. 언론과 정책 토론은 실험실 간 경쟁과 기술 능력 비교에만 몰리고 있으며 AI가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같은 주, 한국에서 다른 선언이 나왔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이재명 정부 1년 성과 간담회에서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공식화했다. 과기정통부가 2026년 2월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와 함께 낸 <인공지능 기본계획(2026~2028)>에는 독자 AI 모델 확보로 모두의 AI 기반 마련이 핵심 과제로 들어 있다. 예산은 1조 245억원, 목표는 전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 배 부총리는 “모든 국민이 AI를 한글이나 산수처럼 쉽고 편리하게 무료로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AI가 만들어내는 부의 편중을 모두의 AI로 풀겠다고도 했다.
배 부총리의 발언은 사실 어려울 게 없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서 생각하면 한쪽에서는 AI의 목적을 묻는 사람이 없다고 탄식하고, 다른 쪽에서 AI를 공익 서비스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 두 목소리는 서로 충돌하는 것 같다. 아니면 무엇이 빠졌든지.
모두의 AI는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모두의 AI가 실제로 어떻게 구성되었나 조금 깊게 파보면 선언과 현실 사이에는 약간 거리가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사업에는 LG AI연구원, 업스테이지, SK텔레콤 등 민간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GPU 자원을 우선 배분하는 인센티브로 이 기업들을 끌어들였다. 개발된 모델은 2026년 8월 오픈소스로 공개될 예정이다. 그런데 하정우 전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이 직접 말했다. “일반 국민은 모델을 그대로 쓰기 어렵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있는 툴을 추가로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11월 출시를 목표로 한 모두의 AI 서비스는 아직 구체적 모습이 확정되지 않았다.
이 그림은 낯설지 않다. 오픈AI는 “AGI가 인류 전체에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미션을 법인 정관에 새기고 공익법인(PBC, Public Benefit Corporation) 형태를 택했다. 앤트로픽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2026년 5월 기준 앤트로픽의 2차 시장 기업가치는 약 9,650억 달러로 제시되고 있으며, IPO를 통해 대규모 자본 조달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공익을 선언하면서 IPO를 준비한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이 같은 해에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다.
AI는 경제학적 의미에서 공공재인가
경제학은 공공재에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다. 1954년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이 정식화한 공공재의 두 조건은 비배제성(non-excludable, 특정인을 이용에서 배제할 수 없음)과 비경합성(non-rival,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 몫을 줄이지 않음)이다. 국방, 등대, 공중파 방송이 전형적 예다.
이 기준을 현재 AI 모델에 적용해보자. 2026년 AAAI에서 Zhang & Zhang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은 LLM을 준공공재(quasi-public goods)로 개념화했다. 비경합성 조건은 부분적으로 충족한다. 내가 AI를 쓴다고 다른 사람 몫이 직접 줄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용자가 늘수록 서버, 데이터센터, 전력 비용은 실제로 증가한다. 그래서 Zhang & Zhang은 LLM을 완전한 공공재가 아닌 준공공재로 분류했다. 그러나 비배제성 조건은 충족하지 못한다. 오픈AI, 앤트로픽. 구글은 고성능 모델을 유료 구독 뒤에 두고, 무료 티어는 성능을 낮췄다.
LSE 비즈니스 리뷰가 이 상황을 더 정확하게 짚었다. AI는 전통적 재화 분류 체계를 녹이고 있다. 분석 서비스처럼 과거 사적 재화였던 것들이 AI로 클럽재(club good)로 바뀌고 있다. 경합하지는 않지만 배제 가능한 것. 돈을 낸 사람에게만 열린 도서관이다. 그러니 이것은 공공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모두의 AI는 어떤가. 무료 제공이라는 점에서 비배제성 조건에 가까이 간다. 그러나 이 무료가 언제까지 유지되는지가 문제다. <인공지능 기본계획(2026~2028)>은 해당 기간의 AI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2028년 이후 무료 제공 지속 여부는 나와 있지 않다. 그리고 성능 목표는 글로벌 AI 모델의 95%다. 챗지피티나 클로드보다 5% 모자라는데 이걸 쓸까? 하는 질문이 절로 튀어 나온다.
AI 설계의 목적을 묻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AI를 무료로 제공하면 공익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설계다. 아세모글루가 정확하게 짚었다. AI가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설계되는가, 아니면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되는가. 이 두 경로는 결과가 전혀 다르다. AI가 인간을 대신하면 일자리는 사라지고 소수가 돈을 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있을 가능하게 하면, 예컨대 의사가 더 많은 환자를 진단하고, 교사가 더 많은 학생을 개별 지도하고, 독립 창작자가 더 넓은 청중에게 닿게 한다.
<인공지능 기본계획(2026~2028)>을 포함한 과기정통부 공식 문서 어디에도 AI 설계 목적에 대한 사회적 논의 자리가 만들어져 있지 않다. 성능 목표(글로벌 95%)와 예산 규모(1조 245억)는 나와 있다. 그런데 AI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도록 만들어지는지 이 질문을 정부도 기업도 의회도 공식 의제로 올리지 않는다. 이것이 아세모글루가 말한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의 한국 버전이다.
AI 공공재라는 말은 어떻게 두 가지 목적에 동시에 쓰이는가
공공재와 공익법인이라는 말이 AI를 논의할 때 빠르게 퍼지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말은 두 가지 다른 목적으로 동시에 쓰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서 공공재라는 말이다. AI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걸 막고,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누구에게나 주자는 것이다. Brookings와 UN이 주도하는 Public AI 논의, Creative Commons의 AI 공유재 작업, 기본소득당의 이익공유제 공약이 이 흐름이다. 이들이 말하는 공공재는 실제로 누구나 쓸 수 있고 이용자가 통제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다른 하나는 빅테크를 막는 방패로서 공공재다. 빅테크가 우리는 이미 공익을 위해 일한다고 선언하면서 규제를 피해가는 것을 막는다는 뜻이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이 PBC 구조를 택하고 AGI가 인류 전체에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미션을 정관에 새기는 것이 이런 흐름이다. 어쨌든 그들은 영리기업이니까, 그리고 미션과 사업은 다른 거니까. 2026년 5월, 기업지속가능성을 연구하는 수브라트 다노르카르가 The Conversation에 이것을 AI 워싱이라 명명했다. AI 이익을 과장하고 위험을 숨기는 방식이 과거 그린워싱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다만 PBC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단순 마케팅 언어와는 다르다. 그러나 법적 구속력이 실제 공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픈AI가 IPO를 추진하면서 비영리 미션을 동시에 내세우는 현실이 그 증거다.
공익이라 부른다고 공익이 되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모두의 AI는 어느 쪽인가. 무료 제공이라는 겉모습은 첫 번째 흐름을 닮았다. 그러나 민간 기업이 개발하고 정부가 무료 배포하는 이 구도에서, 기술 주권은 민간에 남고 서비스 비용만 공공이 진다. 국가AI컴퓨팅센터의 민간 지분이 공공 30% 미만으로 확정된 것이 그 방향을 확인시킨다.
화이트헤드는 <과학과 근대 세계>(Science and the Modern World, 1925) 1장에서 ‘irreducible and stubborn facts’라는 표현을 썼다. 뭐라고 해석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을 스터번 팩트(stubborn facts)라고 불렀다. 그 기준을 모두의 AI에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예산 1조 245억원, 성능 목표 글로벌 95%, 2028년 이후 무료 지속 여부 미확정, 민간 주도 개발. 이 숫자들이 스터번 팩트다. 공익이라 포장한다고 해서 공익이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아세모글루가 탄식한 것처럼 우리는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만 논의하고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모두의 AI가 진짜 공공재가 되려면 설계 목적을 공개하고, 이용자가 통제에 참여할 길을 만들고, 2028년 이후 재원을 확보하고, 독립 창작자와 노동자를 합의 테이블에 앉히는 것이 먼저다. 선언은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FAQ
공공재는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정식화한 개념으로, 비배제성(누구나 이용 가능)과 비경합성(한 사람이 써도 다른 사람 몫이 줄지 않음) 두 조건을 충족하는 재화다. AI를 공공재로 만들자는 주장은 AI 기술 접근을 전기·수도처럼 누구나의 권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아니다. 비경합성은 부분적으로 충족하지만, 비배제성은 충족하지 못한다. 오픈AI, 앤트로픽, 구글은 고성능 모델을 유료 구독 뒤에 두고 있다. 2026년 AAAI에서 Zhang & Zhang 연구팀은 LLM을 완전한 공공재가 아닌 준공공재(quasi-public goods)로 분류했다.
절반만 맞다. 무료 제공이라는 점에서 비배제성 조건에 가까이 가지만, 민간 기업이 개발하고 정부가 배포하는 구조여서 기술 주권은 민간에 남는다. 2028년 이후 무료 제공 지속 여부도 확정되지 않았다. 예산 1조 245억원, 성능 목표 글로벌 95%가 공식 계획의 전부다.
AI 기업이 ‘공익’, ‘공공재’, ‘인류를 위한 AI’ 같은 언어를 내세워 실제 독점 구조와 규제를 피하는 전략을 가리킨다. 2026년 5월 기업지속가능성 연구자 수브라트 다노르카르가 The Conversation에서 명명한 개념으로, ESG 영역의 그린워싱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네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첫째, AI 설계 목적의 공개와 사회적 논의. 둘째, 이용자가 통제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구조. 셋째, 2028년 이후를 포함한 장기 재원 계획. 넷째, 독립 창작자와 노동자를 합의 테이블에 앉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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