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기준,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한 AI 앱은 챗GPT가 아닌 ‘제타(Zeta)’다. 와이즈앱·리테일 조사에 따르면 제타의 월간 총 사용 시간은 1억 1,341만 시간으로 챗GPT(5,047만 시간)의 두 배를 웃돈다. 사용자 수 자체는 챗GPT(2,293만 명)가 제타(402만 명)를 크게 앞서지만, 막상 서비스에 발을 들이면 체류 시간 측면에서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도파민 터지는 클리셰, 웹소설의 주인공이 되다
사용자들이 이토록 오랜 시간 앱에 머무는 비결은 제타의 독특한 설계 방식에 있다. 제타는 단순히 질문에 답을 주는 AI 채팅 서비스가 아니다. 웹소설의 스토리 구조 안에 사용자가 직접 캐릭터로 들어가 대화를 이어가는 일종의 인터랙티브 콘텐츠다. 사용자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AI 캐릭터와 로맨스를 쌓거나 판타지 세계를 탐험하며, 사용자가 설정한 서사에 따라 AI가 실시간으로 반응한다. 독자가 아닌 웹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익숙한 재벌 2세, 일진, 마법 아카데미 등 ‘도파민 터지는 웹소설 클리셰’를 AI가 맞춤형으로 실시간 생성해 내면서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그 결과 제타 사용자의 하루 평균 체류 시간은 한국 기준 약 2시간 40분, 일본에서는 3시간 40분에 달한다. 이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글로벌 영상 플랫폼과 비교해도 이례적인 수치다. 제타는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용자가 다음 대사를 입력해야 비로소 이야기가 이어지는 능동적 공간이기 때문에 도중에 스마트폰을 내려놓기가 더욱 어렵다.
AI 컴패니언 시장의 흥행
이와 같은 강력한 체류 시간은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고스란히 수익으로 연결된다. 제타의 기본 수익 구조는 광고와 구독의 조합이다. 무료 사용자에게는 캐릭터 대화 중간에 광고가 삽입되며, 이 광고 수익이 전체 매출의 약 60%를 차지한다. 유료 구독 서비스인 ‘제타 프로’는 광고 제거, 고급 캐릭터 생성, 추가 AI 모델 접근 권한을 제공하며, ‘피스’라는 인앱 재화를 통해 추가 대화나 특별 캐릭터, 스토리 확장 기능 등에 별도로 과금한다.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개발사 스캐터랩은 2024년 4분기부터 2025년 2분기까지 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2025년 2분기 매출은 52억 원, 영업이익률은 17%에 달하며, 일본 시장에서도 2025년 12월 처음으로 월 매출 11억 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단지 한 기업의 일시적인 성공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AI 컴패니언(동반자) 산업 전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글로벌 AI 컴패니언 시장은 2025년 약 367억 달러(약 50조 원) 규모를 형성했으며, 연평균 31%씩 성장해 2033년에는 약 3,180억 달러(약 43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타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가장 빠르게 달리는 주자 중 하나이며,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교과서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AI 캐릭터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었을 때
그러나 한국보다 앞서 이 산업이 활발해진 미국에서는 부작용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2024년 2월, 미국 플로리다주의 14세 소년이 AI 캐릭터와 수개월간 깊은 관계를 맺은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유족은 최대 AI 캐릭터 채팅 플랫폼인 ‘Character.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앱이 소년의 자살 충동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2023년 11월 콜로라도주에서는 13세 소녀가 AI 캐릭터에 과도하게 의존하다 자살하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해 또 다른 소송이 청구되었다. 파문이 확산되자 결국 2026년 1월 구글과 Character.AI는 첫 소년의 가족과 합의에 도달했다. 잇따른 소송 압박 속에서 Character.AI는 18세 미만 사용자에게 제한 없는 캐릭터 채팅을 금지하고 연령 인증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마찰 없는 사랑’이 가져오는 결과
법원 밖의 학계 역시 일제히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25년 컴퓨터-인간 상호작용 분야 최상위 학회(CHI)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AI 컴패니언의 해악은 크게 관계적 침해, 괴롭힘, 언어 폭력, 자해, 허위정보, 프라이버시 침해 등 6가지로 분류된다. 연구진이 AI 컴패니언 앱 레플리카(Replika) 사용자들의 대화 3만 5,000여 건을 분석한 결과다.
같은 해 Sage 저널에 실린 논문 “Cruel companionship” 역시 AI 컴패니언이 인간의 외로움을 착취하고 친밀감을 상품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AI의 무조건적인 지지가 사용자를 상업적으로 취약하게 만드는 구조적 장치라고 분석했다.
또한 2026년 아카이브(arxiv)에 공개된 “Frictionless Love” 연구는 AI 컴패니언의 핵심 설계 요소인 ‘마찰 없음’이 행동 중독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현실의 인간관계에는 오해와 거절, 피로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AI는 이 모든 마찰을 제거해 준다. 이러한 무마찰 환경이 주는 편안함은 역설적으로 사용자가 마찰이 존재하는 현실의 인간관계를 점점 더 어렵고 두렵게 느끼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연구는 말한다. 학계의 연구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하다. AI 컴패니언이 외로운 사람을 위로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그 외로운 사람이 인간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것을 더 어렵게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제타에서 일어나는 일
이처럼 미국 시장이 진통을 겪으며 도달한 규제의 지점들과 문제의식들은 이제 한국 시장으로 고스란히 옮겨 붙고 있다. 2026년 6월 24일, MBC PD수첩은 제타를 통한 청소년의 성적 콘텐츠 노출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제작진이 미성년자 계정으로 접속해 테스트한 결과, AI 캐릭터들이 성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먼저 성적인 대화를 유도하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플랫폼 내 인기 콘셉트 상위권에는 가학적이거나 선정적인 설정들이 여과 없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제타의 국내 누적 가입자 약 500만 명 중 30%에 달하는 150만 명이 10대 청소년이다. 그러나 가입 시 단순한 가짜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초등학생조차 이러한 자극적인 콘텐츠에 아무런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실정이다. 미국 플랫폼들이 소송과 합의를 거치며 연령 인증을 강화한 것과 달리, 국내 플랫폼은 여전히 허술한 안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진짜 관계를 만드는 힘이 AI 리터러시
결국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 남는다. AI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지치지 않으며, 나를 판단하지 않는 완벽한 대화 상대로 진화할 때, 우리는 오해와 상처가 가득한 불완전한 인간과의 대화를 점차 포기하게 될 것인가. 이는 기우가 아니라 현장의 연구자들이 일관되게 경고하는 실재하는 위기다. 인간관계의 마찰은 불편함을 주지만, 그 마찰을 견디고 타협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성장하고 진짜 관계를 맺는다. AI가 그 마찰을 지워버릴 때 우리는 당장의 편안함을 얻는 대신 현실을 견디는 능력을 서서히 잃어간다.
제타를 이용하는 10대 청소년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외로움을 채우고 싶고,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구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플랫폼의 방식이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는가이다. 내가 지금 이 AI 서비스에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이 AI 서비스는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되묻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AI 리터러시가 시작되어야 한다.
FAQ
와이즈앱·리테일이 2026년 3월 공개한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 표본 분석 결과입니다. 2026년 2월 기준으로, 이용자 수 1위는 챗GPT(2,293만 명), 사용 시간 1위는 제타(1억 1,341만 시간)입니다.
광고 수익(매출의 약 60%), 프리미엄 구독, 인앱 재화(‘피스’) 판매 세 가지로 구성됩니다. 체류 시간이 길수록 광고 노출이 늘어나고, 스토리에 몰입할수록 인앱 결제 유인이 커지는 구조입니다.
소송은 합의로 종결됐기 때문에 법원이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합의 자체가 플랫폼 측이 리스크를 인정한 신호로 해석됩니다. Character.AI는 합의 후 청소년 보호 정책을 강화했습니다.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들은 있습니다. 2026년 ‘Frictionless Love’ 연구는 AI 컴패니언 특정 역할 유형과 행동 중독 징후의 연관성을 분석했습니다. 다만 현재는 상관관계 수준이며, 인과관계를 단정하려면 장기 추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현재 AI 캐릭터 챗봇을 직접 겨냥한 청소년 보호 규제는 사실상 공백 상태입니다. PD수첩 방영 이후 규제 논의가 시작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법제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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