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AI 교육에 1조 4천억 원을 투입했다. 학생마다 스마트기기를 지급하고 AI 디지털교과서도 도입했다. 그런데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학생 10명 중 6명은 AI 교과서에 한 번도 접속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면 결과가 좋지 않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AI는 몇 개월마다 새 버전이 나온다. 반면 학교는 교육과정을 바꾸는 데만 몇 년이 걸린다. 어쩌면 지금의 문제는 누군가의 실수가 아니라, 너무 빠른 기술과 원래 느릴 수밖에 없는 교육 시스템이 충돌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AI 교실은 생겼다. 그런데 잘 쓰이지 않았다
교육부는 2023년부터 AI 디지털교과서(AIDT) 사업에 1조 4,093억 원을 투입했다. 학생마다 스마트기기를 보급하고, 전국 교실에 초고속 무선망도 구축했다. 2026년 기준 AI 선도학교는 약 1,900곳에 이른다. 인프라만 놓고 보면 준비는 충분해 보인다. 문제는 활용이었다.
감사원이 2025년 12월 17일 발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AIDT를 10일 이상 사용한 학생은 전국 평균 8.1%에 불과했다. 반면 한 번도 접속하지 않은 학생은 60%에 달했다. AIDT를 채택한 학교도 전체의 32.3% 수준이었다.
AI 교실은 만들어졌지만, 정작 학생과 교사의 일상 속으로는 충분히 들어가지 못한 셈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교육 시스템은 원래 느리게 움직인다
현장 교사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AI가 들어왔지만 일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기기 접속이 안 되면 교사가 해결해야 하고, 학생이 예상치 못한 사이트에 접속해도 교사가 관리해야 한다. AI는 보조 도구로 들어왔지만, 책임은 여전히 교사에게 남아 있다.
하지만 이걸 단순히 교육부의 정책 실패나 교사의 저항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학교는 원래 빠르게 움직이도록 설계된 시스템이 아니다.
교육부는 2025년 11월, 초·중·고 교육과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2026년 개발을 시작해 2029년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하는 일정이다. 지금 논의가 시작된 내용이 실제 교실에 들어가기까지 3년 이상 걸리는 셈이다. 현재 중학교 정보 교과 68시간 중 AI 관련 내용은 13시간 정도다. AI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교육과정에 반영되는 속도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교육과정을 바꾸려면 검토와 합의가 필요하고,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며, 교사 연수와 현장 적용 과정도 거쳐야 한다.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인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AI가 이런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AI는 몇 개월마다 새로운 기능이 등장하지만, 학교는 몇 년 단위로 움직인다. 지금 우리가 보는 혼란은 결국 이 속도 차이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학생이 게으른 게 아니다. 환경이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AIDT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학생들이 AI를 멀리하는 건 아니다. 학교 밖에서는 이미 ChatGPT나 다른 생성형 AI를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왜 AI를 자주 사용하면서도 학습 효과를 제대로 얻지 못하는 걸까. 최근 일부 연구자들과 교육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학생 개인보다 학습 환경에서 찾고 있다.
2026년 6월, 글로벌 경제 분석 매체 The Economy는 ‘AI 인지 발달 저해(AI Cognitive Stunting)’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핵심은 단순하다.
사람은 원래 고민하고, 틀리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서 배운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그 과정을 건너뛰게 만들 수 있다. 학생이 실력을 쌓는 데는 ‘마찰(friction)’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생이 스스로 글을 쓰기 전에 AI에게 답을 요청하면 결과물은 빠르게 완성된다. 하지만 논리를 구성하고 표현을 다듬는 과정은 경험하지 못한다. 겉으로는 과제가 완성됐지만, 실제 학습은 충분히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이것이 학생 개인의 의지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OECD의 PISA 2022 결과를 보면 회원국 평균 수학과 읽기 성취도가 이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즉, 학습 역량에 대한 고민은 생성형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존재했던 문제다. AI는 새로운 문제를 만든다기보다, 기존 문제를 더 쉽게 가려버리거나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대로 AI가 항상 학습에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2025년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잘 설계된 AI 튜터를 활용한 학생들이 더 높은 학습 성과를 보였다. 결국 차이는 AI 자체에 있지 않았다. 답을 대신 내주는 방식으로 쓰느냐,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쓰느냐에 있었다.
금지도 아니고, 방치도 아니다
1조 4천억 원이 보여준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기기를 보급하고 플랫폼을 만든다고 해서 학습이 자동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AIDT가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바뀐 뒤, 많은 학교는 다시 익숙한 방식의 수업으로 돌아갔다. 굳이 수업 흐름을 끊어가며 새로운 도구를 사용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AI를 금지하는 것이 답일까. 현실적으로도 어렵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미 학생들은 학교 안팎에서 AI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사용 여부가 아니라 사용 순서다.
The Economy는 이를 ‘시퀀싱(Sequencing)’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먼저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만들어본다. 그 다음 AI를 활용해 놓친 부분을 확인하거나 반론을 찾고, 결과물을 다듬는다. 반대로 처음부터 AI에게 답을 맡기면 사고 과정 자체를 건너뛰게 된다. 같은 AI를 사용해도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다.
결국 필요한 것은 AI를 멀리하는 것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언제 AI를 쓰고, 언제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것이 AI 리터러시의 핵심이다.
AI 사용법보다 중요한 것
학교가 AI를 따라잡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교육과정이 바뀌는 동안에도 학생들은 이미 AI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AI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언제 도움을 받아야 하고 언제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지에 있다. 같은 AI를 사용해도 어떤 사람은 더 깊이 배우고, 어떤 사람은 생각하는 과정을 건너뛴다. 앞으로 AI가 더 좋아질수록 그 차이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AI 사용법이 아니다. AI를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하고, 필요한 순간에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다. AI 리터러시 교육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보다,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판단력일지 모른다.
FAQ
기기와 플랫폼 같은 인프라는 빠르게 구축됐지만, 실제 수업 방식과 교육과정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새로운 기술이 교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서는 교사 연수, 수업 설계, 평가 방식 변화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AI 자체가 사고력을 떨어뜨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스스로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AI가 대신하게 되면 학습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를 답안 생성기가 아니라 사고를 돕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먼저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만들어본 뒤 AI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AI에게 바로 정답을 요청하기보다 아이디어를 점검하거나, 반론을 찾거나, 글을 다듬는 과정에서 활용할 때 학습 효과가 더 높게 나타날 수 있다.
교육과정 개정이 2029년에 이루어지는 동안, 학생들은 이미 지금 AI를 쓰고 있다. AI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알고, 언제 AI를 쓰고 언제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능력은 제도가 바뀌기를 기다리지 않고 지금 키울 수 있다. AI가 더 발전할수록 이 판단력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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