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 정말 AI 집약화의 해독제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일 뿐인가. 답을 먼저 말하면 이렇다. 기본소득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그 필요조건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
AI가 만드는 새로운 취약함
1편에서 살펴본 UC 버클리 연구는 이 시리즈의 출발점이다. AI 도입 후 직원들은 일을 덜 하지 않았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넓은 범위로 일했다. 그리고 이것은 강요가 아니라 구조적 압력에 의한 자발적 선택이었다.
2편에서는 법이 이 문제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노란봉투법은 수직적 권력 구조를, 연결 차단권은 시간의 경계를 다루지만, AI가 무너뜨리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근무 시간 안에서, 수평적으로, 업무의 범위가 팽창하는 문제다. 법은 명령을 찾는데, AI 집약화는 명령 없이 일이 늘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어디에 들어오는가.
AI 집약화가 구조적 압력이라면, 그 압력에 맞설 수 있는 것은 협상력이다. 노동자가 ‘이 정도로 과하면 나는 거부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힘. 그 힘은 어디서 오는가. 거부했을 때 버틸 수 있는 경제적 기반에서 온다. 이것이 기본소득과 AI 집약화를 연결하는 논리다. AI가 만드는 ‘가능성이 의무가 되는 구조’에 맞서려면, 개인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아니오’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협상력 이론의 구조
이 논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필립 판 파레이스가 말한 ‘실질적 자유(real freedom)’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형식적 자유 – 원한다면 그만둘 수 있다 – 는 경제적 기반 없이는 공허하다. 실질적 자유는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AI 집약화 맥락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구체적이다. ‘이 일은 내 역할 범위를 벗어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누구에게나 허용된 자유지만, 그 선택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본소득 수령 시 행동 변화에 대한 경기연구원 2차 기본소득 일반의식조사(2021, 전국 성인 1만 명 대상)에서는 “일을 계속한다” 86.3%, “일을 늘린다” 4.2%로 나타났다. 반면 “일을 줄인다”는 응답은 지급액 구간에 따라 달랐다. 월 50만 원 이하 전 구간에서 10% 미만(10만 원 이하 5.4%, 41~50만 원 9.0%)이었고, 월 51~100만 원 구간에서 14.0%로 높아졌다. 이 데이터는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보충적 수준의 기본소득은 노동 의욕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정도 수준에서 협상력의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협상력 효과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기본소득이 ‘거부 비용’을 낮출 만큼 충분해야 한다. 월 10만 원 수준의 토지배당은 상징적으로 중요하지만, 실제 협상력을 바꾸기에 충분한가. 솔직히 말하면 불확실하다. 도시 직장인이 AI 집약화에 맞서 ‘이건 내 업무 범위를 벗어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쿠션이 월 10만 원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반론을 회피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 논리에도 약점은 있다.
첫째, AI 집약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버클리 연구가 보여준 것은 경쟁 동학이다. 옆자리 동료가 AI로 더 많은 일을 맡으면, 나도 따라야 한다는 압력이 생긴다. 기본소득이 내게 월 10만 원을 주더라도, 내가 혼자 ‘이 정도로 충분해요’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조직에서 뒤처지는 사람이 된다. 개인의 경제적 쿠션이 집단적 경쟁 압력을 이길 수 있을까. 여기서 기본소득론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개인의 협상력을 높이는 도구지, 조직의 경쟁 문화를 바꾸는 도구가 아니다.
둘째, 거부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AI 집약화의 피해는 불균등하다. 대체 불가능한 스킬을 가진 고숙련 노동자는 AI를 도구로 쓰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 반면 AI에 업무를 빼앗기거나 역할이 모호해진 중숙련 노동자는 선택의 여지가 좁다. 기본소득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아니오’라고 말해도 잃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은 AI 집약화의 ‘해독제’라기보다 ‘안전망’에 가깝다. 독을 중화하는 것이 아니라 독을 먹고 쓰러졌을 때 땅에 닿는 충격을 줄여주는 것.
셋째, 재원의 현실성. 전 국민 보편 지급, 기존 복지제도 유지 가정 시 한국 인구 5,000만 명에게 월 100만 원을 지급하면 연간 약 600조 원이 필요하다. 현재 전체 세출(약 650조 원)에 맞먹는 규모다. 반면 월 10만 원 수준의 토지배당은 재정적으로 훨씬 현실적이지만, 앞서 말한 대로 협상력 변화에 충분한 수준인지는 다른 문제다. 재원 문제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문제라는 기본소득론의 표준 답변은 맞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가능한 수준의 기본소득이 AI 집약화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
반론을 충분히 다뤘으니, 이제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를 살펴보자. 어쩌면 선언이다. 기본소득은 AI 집약화의 완전한 해독제가 아니지만 AI 시대에 꼭 필요한 요소다.
하나, 문제의 구조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AI 집약화는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일자리에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IMF 보고서(Chang et al., 2025)에 따르면 한국 전체 일자리의 약 절반이 AI 영향에 노출되어 있으며, 노출 정도는 여성, 청년, 고학력층에서 더 크다. 이들이 AI 집약화의 압력을 감당하면서 동시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완충재가 없다면, 그 비용은 과로, 번아웃, 경력 단절로 지불된다.
둘, 협상의 구조를 바꾸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AI 집약화를 멈추지는 못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있으면 노동자는 좀 더 나은 조건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의 생존이 걸려 있지 않기 때문에.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2017~2018, 실업자 2,000명, 월 560유로)에서 수혜자들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지만, 삶의 만족도, 재정적 안정감, 인지 능력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대조군보다 높게 나타났고, 정신적 긴장, 우울, 외로움도 낮았다. 심리적 안정이 더 나은 의사 결정과 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로가 있다. 다만 이 실험은 실업자만을 대상으로 했고, 실험 2년차 시작 시점에 제어집단에만 새로운 고용 의무 조건이 추가되어 결과 해석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함께 밝혀둔다.
그래도 남는 질문
이 시리즈는 하나의 연구에서 출발했다. UC 버클리 연구팀이 8개월간 현장에 붙어서야 포착할 수 있었던 사실. AI는 일을 줄이지 않는다, 집약화한다는 것이다.
1편에서는 그 사실을 해부했다. 2편에서는 법이 이 문제를 잡지 못하는 이유를 따졌다. 3편에서는 기본소득이 답이 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포함해서 살펴봤다. 솔직히 아직 1편의 문제는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법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다루기 어렵듯이, 정책도 보이지 않는 피해를 해결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음’에는 또 다른 층이 있다. AI가 일의 양과 범위를 키우는 문제, 법과 기본소득이 다루려는 문제. 이것들은 결국 눈에 보이는 행동의 문제다. 그런데 AI가 생각 자체를 대신하기 시작하면 그때 우리가 잃는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 기사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