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시장의 무게가 이미 모델에서 인프라 쪽으로 기울었어요. 오픈AI는 ‘오퍼레이터’, 앤트로픽은 ‘클로드 코드’와 ‘컴퓨터 유즈(Computer Use)’, 구글은 ‘에이전틱 클라우드’를 내세우며 모델을 둘러싼 에이전트 플랫폼 경쟁으로 옮겨갔습니다.
한편 한국 통신 3사는 다른 자리를 골랐습니다. 모델 단독 승부 대신, 그 모델들을 돌릴 GPU와 데이터센터를 빌려주는 사업입니다.
SK텔레콤의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이 그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AIDC 매출 1,314억 원, 전년 동기 대비 89.3% 증가.
박종석 SKT 최고재무책임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AIDC 사업은 기존 유무선 통신 사업과 비교했을 때 앞으로 수익성 측면에서 더 좋아질 여지가 크다.
같은 분기 LG유플러스의 AIDC 매출은 1,144억 원으로 31% 증가했고, KT 클라우드는 2,501억 원을 기록하며 5년 내 500MW까지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같은 주에 국회는 통신 3사가 가는 그 길에 깔판을 깔아줬습니다. 5월 7일 본회의를 통과한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정식 명칭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입니다.
AIDC 특별법, 무엇이 통과되었나
특별법은 6개 법안을 병합한 것입니다. 정동영·한민수·황정아·조인철(더불어민주당), 김장겸(국민의힘), 이해민(조국혁신당) 의원이 발의한 안이 4월 14일 과방위, 5월 6일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의결됐어요. 9개월 유예기간을 두고 2027년 2월부터 시행됩니다.
법안의 핵심은 네 가지 규제 완화입니다.
➊ 인허가 일괄처리
AIDC 사업자가 전력계통영향평가, 에너지사용계획 협의, 건축 허가 등을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한 번에 신청할 수 있게 했어요(제18조 제1항).
➋ 타임아웃제
관계 기관장이 법정 기간 안에 인허가 거부 통지를 하지 않으면, 기간이 끝난 다음 날 인허가가 완료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행정 지연으로 사업이 늦어지는 걸 막겠다는 취지죠. 다만 독소조항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법사위 심사에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보완 장치를 뒀습니다.
➌ 비수도권 전력계통영향평가 면제(제19조)
대규모 전력 소비 시설이 전력망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분석·관리하는 제도를 비수도권 AIDC에 한해 빼주는 거예요. 수도권에 쏠린 데이터센터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유인책으로 작용합니다.
➍ 시설 기준 완화
서버 중심 건물의 특성을 감안해 승강기·주차장·미술품 설치 기준 같은 일반 건축물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풀어줄 수 있게 했어요.
그런데 한 가지 조항은 막판에 빠졌습니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구매할 수 있게 해주는 ‘LNG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특례입니다. 화석연료 사용을 법으로 장려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거셌고, 결국 심사 과정에서 삭제됐어요.
그런데 LNG PPA 한 줄 빠졌다고 환경 규제가 채워진 건 아니에요.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진흥은 있고 환경 규제는 없다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은 환경 규제와 주민 수용성 평가를 본문에 거의 담지 않았어요. 본회의 반대토론에 나선 정혜경 진보당 의원의 발언이 그 지점을 짚었습니다.
현재의 법안은 대기업 데이터센터의 비용과 위험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법안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 데이터센터가 얼마나 많은 전기와 물을 사용하고 줄일 것인지, 지역사회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등의 사회적 합의입니다.
법안 통과 일주일 전, 시민사회는 같은 우려를 정리해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4월 30일 참여연대·녹색전환연구소·환경정의가 용혜인·박정현·박지혜·정혜경·한창민 의원과 함께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문제 진단과 대안 모색’ 토론회를 개최했어요.
토론회에서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특별법의 핵심 문제는 진흥만 있고 규제가 제로라는 대목”이라며 “AI도 기후나 환경에 허용하는 한계 범위 안에서 존재해야 하기에 재생에너지 사용 의무화와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김철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국내 전력은 총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수도권 송전 제약이 문제인 상황”이라며 “자가 발전 의무 없이 공공망만 저렴하게 이용하다 사업이 실패할 경우, 그 리스크를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되는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죠.
이선미 참여연대 기획팀장은 타임아웃제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관계 기관이 충분한 검토 없이 기간 내에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되거나, 혹은 행정 부담으로 며칠 묶여 있다가 인허가가 남발될 위험이 있다.”
세 가지 우려가 한 줄로 정리됩니다. 안전·환경·지역사회 부담이라는 데이터센터의 사회적 비용을, 특별법은 평가하지도 분담시키지도 않은 채 ‘진흥’만 명시했다는 거예요.
해외는 왜 똑같이 안 갔나
다른 나라들이 환경 규제 없이 진흥만 갔으면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비교 대상국들은 정반대로 갔어요.
독일은 에너지효율법(EnEfG)에 따라 신규·대규모 데이터센터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2024년 50%, 2027년 100%까지 끌어올리는 일정이에요.
싱가포르는 전력·물 소비 우려로 3년간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을 전면 중단했고, 지금은 저탄소 인프라 연계를 충족할 때만 허용합니다. 아일랜드는 설계 단계부터 탈탄소화와 재생에너지 추가성을 증명할 수 있어야 데이터센터 개발을 허가해요.
한국 특별법에는 이런 종류의 의무가 한 줄도 없습니다. 비수도권으로 가면 평가 자체가 면제되니, 사업자 입장에서는 환경 기준을 신경 쓸 유인이 줄어들어요. 비교의 결과는 단순합니다. 한국은 ‘먼저 짓고 나중에 생각하는’ 법을 골랐습니다.
통신사 매출 89% 증가의 이면
2026년 현재, SKT는 울산 미포국가산업단지에 7조 원 규모의 AIDC를 짓고 있습니다. 2027년 41MW 1차 가동, 2029년 103MW 2차 가동을 목표로, 향후 1기가와트(GW)까지 확장 가능한 설계예요. GPU 6만 장을 수용한다고 하죠.
SKT의 가산 AIDC에는 엔비디아 B200 1,000장 이상을 묶은 GPU 클러스터 ‘해인‘을 가동 중입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에서 따온 이름으로, ‘디지털 팔만대장경을 품은 소버린 AI 인프라’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LG유플러스는 파주에 200MW 규모의 AIDC를 6,000억 원 들여 2027년 완공할 예정이고, KT는 5년 안에 전체 AIDC 용량을 500MW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숫자들을 한 자리에 모으면 보이는 게 있어요. 통신 3사의 자체 LLM(SKT 에이닷 X(A.X), KT 믿:음, LG AI연구원 엑사원)은 글로벌 프론티어 모델들과 단독으로 경쟁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주력 무게를 GPU 임대·코로케이션·DBO 같은 인프라 사업으로 옮긴 거죠.
5월 26일 과기정통부가 공개한 ‘K-AI 생태계 확산’ 사례도 같은 흐름의 일부입니다. 국가 R&D 예산 심의에 업스테이지 모델, 부산시 행정에 네이버 모델(‘AI 부기 주무관’), 파주시 민원에 LG AI연구원 모델, 독거노인 안부전화에 네이버 케어콜이 들어갔어요.
같은 날 시사저널 굿컴퍼니컨퍼런스(GCC) 2026에서 김경만 과기정통부 인공지능정책실장은 “AI 풀스택”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AI 데이터센터에서 모델, 솔루션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라는 뜻이에요. 한국이 ‘AI G3’에 들어가려면 풀스택 전체를 갖춰야 한다고요.
SKT도 같은 단어를 씁니다. 박종석 CFO는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AI 인프라와 모델, 서비스를 아우르는 풀스택” 전략을 천명했어요. 정부와 산업이 같은 화법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풀스택의 가장 아래층, 그러니까 데이터센터의 전기·물·토지·소음·전자파·열을 누가 부담하는지에 대한 합의는 비어 있습니다. 정혜경 의원이 본회의에서 외친 그 질문이 답을 받지 않은 채 법이 통과된 거죠.
진흥 입법의 진짜 비용은 누가 지불하나
비용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디론가 가요. AIDC 특별법이 환경 규제와 주민 수용성 평가를 거의 비워둔 상태로 시행되면, 그 비용은 비수도권 지역사회, 인근 주민, 전력망의 다른 사용자,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청구됩니다.
이런 구조가 처음은 아니죠. 에이릿 이전 글 ‘낮은 가치의 인간’이라는 진단, AI 시대의 인간 존엄을 묻다에서도 같은 패턴을 봤어요. AI 기본법은 2026년 1월 시행됐지만, AI 도입으로 인한 직무 대체나 인건비 재조정 시 노동자 보호 절차가 비어 있었습니다. 정부의 2026년 AI 예산은 약 10조 원이 편성됐는데, AI 전환에 따른 노동 보호 예산은 별도로 잡혀 있지 않았어요.
이번에도 비슷합니다. AIDC 특별법은 통과됐는데, 전력·물·환경·주민 비용을 정의하고 분담시키는 규정은 들어가지 않았어요.
특별법이 시행되는 2027년 2월까지 남은 9개월의 유예기간이, 빈 자리를 채울 시간이 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대통령령으로 데이터센터의 정의·최소 전력사용효율(PUE)·물사용효율(WUE) 같은 기준이 들어가고, 주민 의견 수렴이 ‘할 수 있다’에서 ‘해야 한다’로 바뀌고, 재생에너지 사용 의무가 단계적으로 들어간다면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 있어요.
9개월은 짧아요. 시민사회와 진보 정치권의 우려가 이미 한 번 입법에 반영되지 못한 채 법이 통과됐다는 사실도 무겁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남깁니다. AI 데이터센터의 전기와 물과 소음과 열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청구서는 어디로 가나요? 누구에게 보내야 한다고, 누가 합의했나요?
AI G3 진입이 목표라면, 그 자리에 들어선 다음의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어떤 사회가 되길 원하는지 먼저 합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FAQ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 산업의 인허가·전력·시설 규제를 완화해 신속한 구축을 돕는 진흥법으로, 2027년 2월부터 시행됩니다.
법정 기간 안에 인허가 거부 통지가 없으면 인허가가 자동 완료된 것으로 보는 제도로, 안전·환경 검토가 형식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대규모 전력 소비 시설이 전력망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 분석·관리하는 제도를 비수도권 AIDC에 한해 면제해주는 특례로, 지방 분산 유인책으로 작용합니다.
독일은 2027년부터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법으로 의무화했고, 싱가포르는 모라토리엄 후 저탄소 조건부 허용 방식을 택했지만, 한국 특별법에는 재생에너지 의무화나 효율 기준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2026년 1분기 SKT AIDC 매출 1,314억 원(+89.3%), LG유플러스 1,144억 원(+31%), KT 클라우드 2,501억 원이며 SKT는 울산에 7조 원, LGU+는 파주에 6천억 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인 LNG 사용을 법적으로 장려하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배치되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늦출 수 있다는 비판으로 심사 과정에서 삭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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