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를 가장 깊이 생각한 사람들이 있다. 읽기 연구의 세계 권위자, 기술과 인간 사고의 관계를 10년 넘게 추적한 저술가, MIT에서 수십 년간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연구한 사회학자.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가 읽고, 말하고, 생각하는 방법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것.
“읽기 전문가인 나도 읽지 못하게 됐다”
UCLA 교육정보학부 교수이자 인지신경과학자인 메리앤 울프(Maryanne Wolf)는 평생 ‘독서하는 뇌(reading brain)’를 연구해온 세계 최고 권위자다.
그러던 어느 날, 울프는 자신이 곧 연구 대상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헤르만 헤세의 장편소설을 다시 펼쳤지만, 도저히 글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페이지를 겨우 넘겨도 머릿속에 남는 내용이 없었다. 자신이 수십 년간 경고해온 지적 퇴행이, 다름 아닌 자신의 뇌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읽기 전문가가 스스로 깊이 읽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가 2018년 저서 <독자여, 집으로 오라>에서 제시한 개념이 바로 ‘딥 리딩(Deep Reading, 깊이 읽기)’이다. 딥 리딩은 단순히 글자를 눈으로 좇는 행위가 아니다. 글을 읽는 동안 뇌 속에서 분석과 추론, 유추와 비판적 사고, 그리고 감정적 공감이 동시에 휘몰아치는 고도의 정신 과정이다. 소설 속 인물의 아픔에 눈물짓고, 논문의 빈틈을 찾아내며, 반론을 떠올리는 모든 순간이 딥 리딩이다.
문제는 딥 리딩 능력이 ‘지속적인 훈련’으로만 유지되는 후천적 근육이라는 점이다. 디지털 텍스트는 우리의 뇌를 다르게 길들인다. 화면 위를 빠르게 훑고, 요점만 골라낸 뒤, 곧장 다음 링크로 넘어간다. 이 방식이 습관이 되면 뇌는 길고 복잡한 텍스트를 버텨내지 못한다. 울프는 이것이 단순한 집중력 저하를 넘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사유 능력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오늘날 대형언어모델(LLM) 중심의 AI는 이 문제를 한층 더 심화시킨다. 과거의 인터넷은 최소한 ‘텍스트를 직접 읽게’는 만들었다. 반면 AI는 읽는 행위 그 자체를 대행한다. “세 줄 요약해 줘” 한마디면 책 한 권을 읽지 않고도 안다는 착각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우리 뇌가 딥 리딩을 연습할 기회 자체가 봉쇄되는 셈이다.
“인터넷은 우리를 얕게 만든다”
2008년, 저널리스트 니컬러스 카(Nicholas Carr)가 〈아틀란틱〉에 기고한 에세이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Is Google Making Us Stupid?)“는 전 세계에 폭발적인 충격을 던졌다. 그는 이 문제의식을 확장해 2010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출간했고, 이 책은 디지털 문명의 폐해를 날카롭게 파헤친 공로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카의 핵심 논거는 뇌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에 기반한다. 인간의 뇌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우리가 반복하는 행동에 맞추어 스스로 회로를 재편한다. 인터넷을 쓸수록 뇌는 빠른 정보 처리와 멀티태스킹, 끊임없는 주의 전환에 최적화된다. 반면 깊은 집중과 사색, 성찰에 관여하는 뇌 회로는 쓸모가 없어지면서 서서히 퇴화한다.
그 사이 우리는 ‘스캔(Scan)’의 명수가 되어간다. 화면 속 긴 글을 ‘F자 패턴’으로 훑으며 핵심 단어만 낚아채는 데는 능숙해졌지만, 그 대가로 한 가지 주제에 오래 몰입하는 능력과 논리의 모순을 추적하는 끈기를 잃었다. 카는 이를 사유의 ‘얕아짐(Shallowing)’이라고 불렀다.
그는 미디어를 ‘망치’ 같은 도구에 비유한다. 어떤 도구를 손에 쥐느냐가 결국 그 도구를 쓰는 사람의 신체를 규정한다. 마샬 맥루한의 명제 “미디어가 메시지다”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것이다. 인터넷은 단순히 정보를 나르는 배달부가 아니다. 인터넷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뜯어고친다.
이 논리를 AI에 대입하면 소름 돋는 결론에 이른다. 인터넷이 정보를 빠르게 ‘검색’하도록 만들었다면, AI는 생각 자체를 빠르게 ‘처리’해 준다. 인간의 뇌가 스스로 고민하고 천천히 추론할 필요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연결이 많을수록 고립이 깊어진다”
MIT의 사회학자 셰리 터클(Sherry Turkle) 교수는 30년 넘게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추적해왔다. 초기에는 인터넷이 새로운 공동체와 정체성을 열어줄 것이라 믿었던 낙관주의자였으나, 기술의 진화를 목격하며 점차 비판론자로 돌아섰다.
2015년 저서 《대화를 되찾자》에서 그녀는 섬뜩한 관찰 결과를 공유한다. 식사 테이블 위에 스마트폰 한 대를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시야에 머무는 순간, 사람들은 언제든 대화가 끊길 수 있음을 직감하고 더 피상적인 주제를 택하며, 상대의 말에 덜 몰입한다. 기기를 켜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인간 관계를 오염시키는 셈이다.
터클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공감 능력의 파괴’다. 미시간대학교 사라 콘래스(Sara Konrath) 연구팀이 수십 년간의 연구를 메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09년 사이 대학생들의 공감 지표는 무려 40%나 급감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감소세의 대부분이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급격히 확산된 2000년 이후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터클은 공감의 아포리아(Aporia)가 바로 ‘대화의 부재’에서 온다고 말한다. 진짜 공감은 온전하게 얼굴을 마주하는 대화에서 태어난다. 상대의 어색한 침묵을 함께 견디고, 미묘한 표정 변화를 읽어내며, 상대의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는 아날로그적인 과정이 필수적이다. 모니터 속 단편적인 텍스트 조각들은 이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여기에 AI가 개입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챗봇과의 대화는 지독하게 편안하다. AI는 인간처럼 불편한 침묵을 만들지 않고, 대화 도중 지치지도 않으며, 내 감정 서툰 표현에 상처받지도 않는다. 언제나 나에게 맞춰준다. 하지만 이 가짜 편안함에 중독되어 진짜 대화가 요구하는 감정적 훈련을 건너뛰기 시작하면, 인간은 살아있는 사람과의 진짜 대화를 점점 더 두렵고 불편한 일로 여기게 된다.
세 사람의 경고가 만나는 지점
울프, 카, 터클. 세 사람이 각자 다른 연구실에서 출발해 가리킨 종착지는 놀랍도록 일치한다.
- 메리앤 울프: 읽는 방법이 생각하는 방법을 결정한다. ‘깊이 읽기’가 사라지면 비판적 사유도 없다.
- 니컬러스 카: 도구는 우리를 재편한다. 효율적이고 빠른 도구에 의존할수록 우리의 뇌도 얕아진다.
- 셰리 터클: 편한 연결은 우리를 고립시킨다. 공감은 관계의 불편함을 견디는 과정에서만 자란다.
인공지능(AI)은 이 세 명의 거장들이 던진 경고를 한꺼번에 현실로 소환하고 있다. AI는 인간을 대신해 읽고, 대신해 생각하며, 대신해 대화한다. ‘인간 효율성의 극대화’라는 달콤한 이름 뒤에서, 우리의 사유와 공감 능력이 조용히 허물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FAQ
딥 리딩의 가치는 결론에 있지 않습니다. 읽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추론, 공감, 반박, 연상이 핵심입니다. AI 요약은 결론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뇌가 해야 할 일을 없애버립니다. 도착은 같아 보여도, 여정 없이 도착한 뇌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카의 주장 중 일부는 과학적 증거보다 앞서간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인지과학 연구들이 그의 논지를 상당 부분 뒷받침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터클은 “나는 기술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대화에 찬성하는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혔습니다.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도구를 쓰는 맥락의 문제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목적으로 쓰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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