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AI를 쓸 때 뇌에서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인류가 AI 도구에 인지 기능을 위임할 때 뇌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본 연구들을 소개한다.
안 쓰면 퇴화하는 생각의 근육
과학적으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명확하게 증명된 사례는 바로 GPS(위성항법시스템)였다.
맥길 대학교 연구팀은 수년에 걸쳐 GPS 사용 습관과 뇌 구조의 관계를 추적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으로만 길을 찾는 사람과 지도를 보며 스스로 경로를 탐색하는 사람의 뇌는 구조부터 달랐다.
- 해마의 위축: GPS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사람들은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핵심 부위인 해마(Hippocampus)의 회백질 부피와 활성도가 눈에 띄게 낮았다.
- 가파른 능력 저하: 2020년 Nature 산하 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된 종단 연구에 따르면, GPS를 더 많이, 더 오래 사용할수록 자기 주도적 길 찾기 능력이 훨씬 가파르게 떨어졌다.
지도를 읽고, 랜드마크를 기억하고, 방향을 계산하는 행위 자체가 해마를 단련하는 훈련이었다. 그 과정을 기계에 위임하는 순간 뇌의 훈련은 멈춘다는 것이다. 뇌는 근육과 같아서 쓰지 않으면 줄어든다. 그리고 AI는 같은 일을 훨씬 넓은 범위에서 한다.
기억을 외주에 맡겼을 때
GPS 연구에 앞서, 검색엔진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도 AI 시대에 살펴볼 만 하다.
2011년, 컬럼비아대학교 심리학자 베시 스패로우(Betsy Sparrow) 연구팀은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했다. 실험 결과, 사람들은 정보를 나중에 검색으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보 자체를 덜 기억했다. 대신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경로만을 더 잘 기억했다. 인터넷이 인간의 외부 기억 장치가 됐다는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구글 효과(Google Effect)”라고 불렀다. 핵심은 기억의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찾을 수 있는 것을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매우 효율적이며 편리하지만,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외우지 않은 정보는 결코 깊이 이해할 수 없다.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내면화하려는 고통스러운 노력 과정에서 비로소 인간의 이해력, 연결 능력, 창의성이 싹트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건너뛰면 검색 결과를 소비할 수 있지만 지식이 쌓이지 않는다. 자, 구글은 정보의 ‘위치’라도 찾아주었지만, AI는 정보의 ‘결과물’을 통째로 생성해 대령한다. 생각할 이유가 더욱 없어진다.
AI와 기억의 관계
2025년, 앙드레 바르카우이(André Barcaui) 교수 연구팀은 대학원생 120명을 두 그룹으로 무작위 분할한 뒤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한 그룹은 ChatGPT를 학습 보조 도구로 삼아 공부하게 했고, 다른 그룹은 AI 없이 책과 논문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공부하게 했다.
그리고 45일이 지난 뒤, 예고 없이 양쪽 그룹에 똑같은 내용의 시험지를 던졌다. 결과는 어땠을까.
- 전통 학습 그룹: 평균 점수 68.5%
- ChatGPT 활용 그룹: 평균 점수 57.5%
겨우 한 달 반이 지났을 뿐인데, AI로 공부한 학생들의 기억은 눈에 띄게 휘발되어 있었다. 연구팀은 이 현상의 원인을 인지과학의 핵심 개념인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ies)’의 실종으로 설명했다.
인간의 기억은 원래 불친절하다. 뇌에 정보가 새겨지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뇌가 고통받을 때다. 기억이 잘 안 나서 끙끙대고, 흩어진 정보를 연결하려 애쓰고, 틀린 문제를 다시 확인하는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만 뇌는 비로소 그것을 장기 기억 장소로 이동시킨다.
하지만 AI는 이 귀찮고 고통스러운 필터링 과정을 단번에 지워버린다. 질문만 하면 정답과 요약본을 가장 매끄러운 형태로 입안에 떠먹여 준다. 뇌가 일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에이릿에서 수차례 다뤘던 인지 부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AI를 믿을수록 생각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와 카네기멜런 대학교(CMU)의 공동 연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 1회 이상 생성형 AI를 쓰는 지식 근로자 319명의 실제 업무 936건을 분석한 결과는 흥미로웠다.
- AI 신뢰도가 높은 사람 ➡️ 비판적 사고 격감
AI를 잘 안다고 자부하고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검증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 자신이 AI 리터러시가 높다는 착각이 오히려 뇌의 비판적 사고 스위치를 꺼버리는 악순환을 낳았다. - 자기 능력을 신뢰하는 사람 ➡️ 철저한 검증
자신의 전문성을 더 믿는 고숙련자들은 AI의 결과물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수정하고, 검증하며 AI를 진정한 ‘도구’로 제어했다.
AI가 빼앗아 간 ‘바람직한 어려움’
과거의 도구들은 인간 인지 기능의 ‘일부’만 대신했다. 계산기는 연산을, GPS는 길 찾기를, 구글은 정보 검색을 도왔을 뿐이다.
하지만 AI는 다르다. 요약, 분석, 추론, 글쓰기, 창의성 등 인간 고유의 고차원적 인지 활동 전반을 대신하는 ‘인지 오프로딩(Cognitive Offloading)’을 유도한다. GPS가 해마 하나를 무력화했다면, AI는 전두엽, 측두엽, 대상피질까지 뇌 전체를 동시에 휴업 상태로 만든다. 쉬는 뇌는 절대로 강해지지 않는다.
여기서 위에서 설명한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ies)’이란 개념이 다시 등장한다. 끙끙대며 기억해 내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글을 쓰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 자체가 뇌를 성장시키는 유일한 열쇠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AI를 써야만 하는 시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다음 아티클에서 자세히 다뤄보자.
FAQ
MIT 연구팀이 명명한 개념으로, AI를 쓸수록 단기적으로는 효율을 얻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에 빚이 쌓인다는 뜻입니다. 카드빚처럼, 당장은 편하지만 나중에 갚아야 할 인지적 비용이 누적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들은 AI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쓰는 경우와 그냥 수용하며 쓰는 경우를 구분합니다. 문제는 AI 사용 자체가 아니라, 생각을 건너뛰는 방식의 사용입니다. 구글 검색 그룹이 뇌파 연결성이 오히려 높았던 것처럼,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가 핵심입니다.
“깊이 읽기(딥 리딩)”의 연구자 메리앤 울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니컬러스 카와 함께 AI 시대에 인간의 사고 방식이 어떻게 변하는지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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