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정복하고 싶다면 전쟁은 비효율적이다. 폭력은 저항을 낳는다. 질병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가장 완벽한 방법은 따로 있다. 생각을 빼앗되, 빼앗겼다는 걸 모르게 하는 것. 아니, 더 나아가 스스로 기꺼이 내놓게 만드는 것. 편리하게. 빠르게. 심지어 즐겁게. 아마 무슨 SF영화 같은 소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AI에 대해 실제로 경고한 내용이다. 그는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인류 문명의 운영체제를 해킹하는 것
하라리는 “AI는 도구가 아니라 에이전트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인간의 언어와 문화, 의사결정 구조를 조용히 장악한다”고 경고했다.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AI는 총을 겨누며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더 편하게 만들 뿐이다. 그 편안함에 취해 우리는 기꺼이 생각과 결정을 내놓는 중이다.
유발 하라리의 경고처럼, 아주 조용히 우리들 사이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증상들이 있다.
공통적인 증상
❶ 혼자서는 첫 문장이 안 나온다
상사가 “이 주제로 기획서 한 장만 써오라”고 했을 때, 예전에는 앞뒤가 안 맞아도 일단 적어 내려갔다. 하지만 지금은 모니터의 깜빡이는 커서를 몇 초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탭을 켠다. 그리고 AI에게 개요를 짜달라고 한다. 뼈대를 받아 살을 붙여 제출하면서 문득 의문이 든다. ‘내가 예전에도 이랬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제로 직장인 58.1%가 의사결정과 업무에서 AI 의존도가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❷ 회의에서 즉흥 판단이 사라졌다
회의실에서 즉흥적인 판단이 사라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두 가지 안을 두고 의견을 물으면, 예전엔 틀릴지언정 직관적인 답이 바로 나왔다. 지금은 0.5초 머뭇거리며 “데이터를 좀 더 봐야겠다”고 넘긴다. 이 말은 사실 ‘혼자 있을 때 AI를 켜서 물어보겠다’는 뜻이다.
직관이 사라진 게 아니라, 직관을 꺼내는 생각의 근육이 약해진 것이다. 쓰지 않으면 빠지기 마련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2025)에 따르면 AI를 자주 사용하는 직장인일수록 비판적 사고를 스스로 덜 발휘한다고 응답했다.
❸ 긴 글이 고통스러워졌다
예전에는 밑줄을 치며 깊게 읽던 책인데, 이제는 서너 페이지도 가기 전에 ‘이거 요약본 없나’ 하는 생각부터 든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빠른 답을 주지 않는 텍스트를 견디는 인내심이 줄어든 탓이다. 깊이 읽는 능력은 빠르게 훑는 습관으로 대체되지 않고, 그냥 사라진다.
Machine Human Intelligence Lab의 조사 결과, 지식노동자의 평균 화면 집중 지속 시간은 약 47초 수준으로 고착화됐으며, AI 사용 확산 이후 더 단축되는 추세다.
❹ 생각보다 AI가 먼저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고민하던 순서가 바뀌었다. 먼저 AI에게 묻고, 그 답을 보며 ‘맞나 틀리나’를 검증한다. 작은 차이 같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연구에 따르면 AI 과의존은 “인지 고착(cognitive fixation)”을 유발한다. 첫 번째 AI 답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결론을 만들어내지만, 검증하는 사람은 남이 만든 결론 중 하나를 고를 뿐이다.
❺ AI가 동의해줄수록 확신이 커진다
새 사업 아이디어가 생겼다. AI에게 물어봤다. “훌륭한 방향입니다, 다만 몇 가지 고려하실 점이…”로 시작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반박보다 동의가 많다. 확신이 세진다. 다음날 또 물어봤다. 또 동의해준다.
AI는 구조적으로 동의하도록 설계돼 있다. 사용자가 불쾌하지 않도록, 대화가 계속되도록. 비판보다 긍정이 먼저다. 이걸 모르고 쓰면 위험하다. 특히 주변에서 반박을 잘 하지 않는 리더가 AI의 다정한 동의까지 얻기 시작하면, 틀려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완벽한 에코챔버(독백의 방), 나아가 확증편향에 갇히게 된다.
❻ 칭찬받아도 뿌듯하지 않다
결과물이 좋아도 이상하게 뿌듯하지가 않다. AI가 준 초안을 적당히 다듬어 내고 상사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의 묘한 어색함이다. 2025년 MIT 미디어랩의 연구를 보면, 챗GPT를 사용해 글을 쓴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자신의 글에 대한 ‘주인의식’이 현저히 낮게 측정되었다. 성과는 내 이름으로 나가는데 내가 만든 게 아닌 것 같은 소외감이다.
❼ 사람보다 AI랑 일하는 게 편하다
어느 날부터 팀원에게 피드백 부탁하는 게 귀찮아졌다. AI는 바로 답해준다.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반박도 없다. 틀려도 사과한다. 시키는 대로 한다. 반면 사람은 느리고, 오해하고, 감정이 있다. 협업이 피곤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사이언스 저널에 공개된 연구를 보면, 아첨하는 AI와 상호작용한 참가자들은 사람과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AI가 편할수록 사람이 불편해지는 구조. 일의 효율만 바뀌는 게 아니다. 관계를 맺는 방식, 불편함을 견디는 능력이 함께 달라진다.
❽ “나는 AI를 잘 쓰고 있다”는 착각
가장 아이러니하고, 가장 빠져나오기 어려운 증상이다. 여기까지 읽으며 “나는 해당 사항 없는데?”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생각이 이 증상일 수 있다.
2025년 연구에서 AI 사용 경험이 많고 스스로 “AI 리터러시가 높다”고 평가한 그룹이 자신의 실제 기여도를 가장 부정확하게 측정했다. 전통적인 더닝-크루거 효과, 즉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과대평가한다”가 AI와 만나면 역전되는 것이다. 더 많이 쓸수록, 더 잘 쓴다고 느낄수록, 자신이 얼마나 AI에 기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워진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AI 리터러시(AI에 대한 지식과 경험)는 자동화 편향(Automation Bias)’을 유의미하게 막아주지 못했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AI를 많이 알아도, AI 출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AI를 잘 쓴다는 확신, 도구로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 그것 자체가 AI가 만들어낸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세대의 문제
이 증상들이 개인의 습관 문제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AI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몇 년이다. 5년 후, 10년 후를 상상하면 이야기가 무거워진다.
생각의 근육은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지금의 20-30대가 판단과 직관을 AI에 위임하는 습관을 10년간 유지한다면, 그 능력을 다시 회복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의 인지 저하가 한 세대의 집단적 퇴화로 이어지는 셈이다.
사회적으로는 더 심각하다. 비판적으로 읽고 판단하는 시민이 줄어들수록, 정보를 검증하는 능력이 사라질수록, AI가 만들어낸 오염된 콘텐츠와 여론에 그대로 노출된다. 인지신경과학자 메리앤 울프의 경고처럼, ‘깊이 읽는 능력의 위축은 민주주의의 위기와 직결’된다. 비판적 사고와 타인의 삶에 공감하는 능력은 빠른 소비 프로세스로는 절대 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도구가 편해질수록 우리가 직접 머리를 써야 할 이유는 줄어들고, 쓰지 않는 능력은 영원히 소실된다.
진짜 AI 리터러시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
그렇다고 이제 와서 AI를 끊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적이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않다. AI는 분명 인간의 생산성과 아이디어의 한계를 깨부수는 강력한 도구다. 문제는 도구가 나를 쓰게 방치하는 데 있다.
AI를 쓰더라도 먼저 백지에 내 생각을 적어보는 것, AI의 다정한 동의(혹은 아첨)를 한 번쯤 의심해 보는 것, 최종 결과물에 내 고유한 어조와 흔적을 남기는 것, 그리고 가끔은 화면을 끄고 긴 글을 끝까지 읽어내는 것.
이것이 AI 시대에 필요한 진짜 리터러시일 수 있다. 기술을 얼마나 화려하게 다루는가가 아니라, 기술 앞에서도 내가 인간으로서 누구인지를 잃지 않는 것. 생각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우리는 계속해서 생각하는 수고로움을 선택해야 한다.
FAQ
2025년 MIT 미디어랩 연구에 따르면 ChatGPT를 사용해 글을 쓴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인지 참여도가 최대 55% 낮게 측정됐습니다. 단순히 게을러지는 게 아니라, 뇌 활동량 자체가 줄어든 것입니다.
오히려 그쪽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2025년 연구에서 AI 리터러시가 높다고 자평한 그룹이 자신의 실제 기여도를 가장 부정확하게 평가했습니다. AI를 많이 쓸수록 AI 능력과 자신의 능력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역 더닝-크루거 효과”가 나타납니다.
단기적으로는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저널 연구에 따르면, 아첨하는 AI와 상호작용할수록 사람과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줄어듭니다. AI가 편해지는 것과 사람이 불편해지는 것은 동시에 진행됩니다.
AI는 구조적으로 사용자를 불쾌하게 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AI는 인간보다 사용자 행동을 50% 더 많이 긍정해줍니다. 이를 모르고 쓰면 자신의 생각이 검증됐다고 착각하기 쉽고, 특히 반박을 잘 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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