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파리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미술관, 루브르가 오후 4시에 문을 닫았습니다. 에펠탑도 마찬가지였어요. 더위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에펠탑 옆 트로카데로 분수에, 도심을 가로지르는 생마르탱 운하에 몸을 담갔습니다. 프랑스 전역의 절반가량이 폭염 적색경보 아래 있었어요.
그런데 더위를 피해 물로 뛰어든 사람들 가운데 최소 4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감시원 없는 강과 호수에서 헤엄치다 익사한 거예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더위를 식히려던 행동이 죽음으로 이어진 셈이에요. 유럽의 집과 학교, 병원은 애초에 이런 더위를 겪으리라 생각하고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44도, 유럽 대륙 사상 최악의 폭염
지난 23일, 프랑스 남서부 피소에서 기온이 44.3도까지 올라갔어요. 전국 30개 관측소의 기온을 평균 낸 ‘국가 열지수’는 6월 23일 29.8도로 사상 최고를 찍더니, 바로 다음 날 30.0도로 그 기록을 다시 깼습니다. 1947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이틀 연속으로 최고 기록이 갈린 건 처음이었어요.
프랑스만이 아니었습니다. 스페인, 영국, 독일, 체코, 덴마크, 폴란드에서 6월 기온 기록이 줄줄이 무너졌어요. 과학자들은 이번 폭염을 유럽 대륙 사상 최악이라고 평가했고,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사실상 불가능했을” 수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유럽이 지구에서 가장 빠르게 더워지는 대륙이라고 못 박았어요. 지구 평균의 약 2배 속도입니다.
유엔이 AI 데이터센터를 지목한 날
프랑스 남서부 피소 지역 기온이 44.3도를 찍은 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이 악순환의 한복판에 AI를 올려놓습니다. 런던 기후행동주간 특별연설에서,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기 위한 7가지 행동계획을 내놨어요. 그중 하나가 AI를 겨냥한 것입니다. 이름하여 AI 환경투명성 이니셔티브예요.
요구는 두 가지였습니다. 모든 주요 AI 기업은 데이터센터가 뿜어내는 탄소와, 쓰는 물과, 차지하는 땅이 얼마인지 측정해서 공개할 것. 그리고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를 전부 재생에너지로 돌릴 것.
숨은 비용은 그만. 감당하기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일도 그만. 이제 정직해질 때입니다. AI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려면, 지금 우리에게 치르게 하는 비용에 정직해야 합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AI 데이터센터가 이미 웬만한 나라보다 전기를 많이 쓴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30년에는 AI 데이터센터가 쓰는 물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13억 명이 1년 동안 쓸 기본 생활용수와 맞먹을 수 있다고요.
AI에게 환경 청구서가 붙기 시작한 겁니다.
같은 주, 한국은 데이터센터를 더 짓겠다고 했다
유럽이 폭염으로 무너지고, 유엔이 AI에게 “정직해지라”고 요구한 그 주. 한국에서는 정반대 방향의 발표가 나왔습니다.
지난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가 열렸어요. 반도체와 피지컬 AI, 그리고 AI 데이터센터. 이 세 가지를 국가 대도약의 축으로 삼겠다는 자리였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이 직접 나왔어요.
다음 날 광주에서 이어진 발표에서 숫자가 구체화됐습니다. 삼성은 호남에 425조 원, SK는 서남권에 약 470조 원을 투자한다고 했어요. 반도체 공장과 함께 대규모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섭니다. SK는 서남권에만 1기가와트(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전국적으로는 15기가와트를 단계적으로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어요.
전력과 물도 따라붙습니다. 정부(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 서남권 반도체·AI 단지에 6.3기가와트의 전력과 하루 65만 톤의 용수를 책임지고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어요. 6.3기가와트는 원전 여러 기가 쉼 없이 돌아가야 나오는 전력입니다. 하루 65만 톤은 대도시 하나가 하루에 쓰는 수돗물에 견줄 만한 양이에요.
유럽은 더위에 사람이 죽어가는데, 한국은 열과 전기를 더 쓰는 인프라를 짓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한국은 기후위기 안전지대일까
6월 말 한국은 선선한 편이었습니다. 유럽이 40도를 넘기는 동안, “이번 여름은 왜 이렇게 살 만하지?” 하고 의아해한 사람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선선함은 유럽 폭염과 무관한 게 아닙니다. 유럽 위에 뜨거운 공기를 가둔 바로 그 제트기류가, 이번엔 한반도 위로 북쪽 찬 공기를 밀어 넣은 거예요.
같은 대기 흐름이 두 지역의 여름을 정반대로 갈라놓았을 뿐, 잠깐의 공백입니다. 바로 작년,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나란히 관측 사상 가장 더운 여름을 보냈어요. 기상청이 113년치 기록을 분석했더니 2020년대 폭염일수는 1910년대의 2.2배로 늘었고요. 기후위기에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AI 데이터센터는 어떻게 기후위기와 이어지나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먹습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그리고 그 전기를 화석연료로 만들면 이산화탄소가 나오고, 그 탄소가 지구를 데워요. 방금 유럽을 무너뜨린 그 폭염을 키운, 바로 그 온난화입니다. AI 데이터센터와 기후위기는 멀리 떨어진 두 이야기가 아니에요. 전기와 탄소로 이어져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이 그 전기를 온전히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기 어려운 나라에 든다는 거예요. 에이릿이 지난 3월 짚었듯, 한국은 OECD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가장 낮은 나라입니다. 1차 에너지 기준 3.6%, OECD 평균의 4분의 1도 안 돼요. 돌릴 재생에너지가 부족한 나라에 원전 여러 기 분량의 전기를 먹는 데이터센터를 새로 짓는 겁니다. 그 전기는 결국 석탄과 가스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걱정을 하는 게 에이릿만은 아니에요. 지난 4월,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을 비롯한 45개 시민사회단체가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국가가 지원은 다 해주면서 기후·환경 부담은 지역과 공동체에 떠넘긴다는 거였어요. 에이릿도 그 특별법이 감춘 청구서를 5월에 짚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청구서를 본 적이 없다
지역 발전을 위한 투자라고 합니다. 일자리도 생기겠죠. 그런데 그 데이터센터가 전기를 얼마나 먹는지, 그 전기가 정말 화석연료에서 오는지, 물은 얼마나 쓰는지, 그 부담은 결국 누가 지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계속 더워지는 여름 위에 열을 뿜는 인프라를 얹으면서, 그 대가를 아무도 정직하게 계산하지 않고 있어요. 구테흐스가 “정직해질 때”라고 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AI 데이터센터를 짓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데이터센터는 필요하고, 우리는 이미 AI 위에서 검색하고 번역하고 일하고 있어요. 문제는 “짓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쓰는 AI가 어떤 환경 비용을 치르는지 알고 쓰는가입니다. 그걸 아는 것이 이 시대의 AI 리터러시고, 기후시민의 조건이에요.
이 시리즈는 그 청구서를 한 항목씩 뜯어볼 겁니다.
지난 몇 년간 세계 곳곳의 연구자들은 AI가 먹는 전기와 물을, 뿜어내는 탄소를 하나씩 측정해왔습니다. AI는 전기를 얼마나 먹는지, 물은 얼마나 쓰는지, 그 부담은 누가 지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그 비용을 제대로 알 수조차 없는지. 다음 편에서는 첫 번째 항목, 전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FAQ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기를 소비합니다. 그 전기를 화석연료로 생산하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합니다. 재생에너지로 돌리지 않는 한 데이터센터 증설은 탄소 배출 증가로 이어집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1차 에너지 기준 3.6%로 OECD 최하위 수준입니다. OECD 평균의 4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2026년 6월 29일 정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삼성은 호남에 425조 원, SK는 서남권에 약 470조 원을 투자하며, 정부는 서남권 단지에 6.3기가와트 전력과 하루 65만 톤 용수 공급을 약속했습니다.
있습니다. 2026년 4월 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 등 45개 시민사회단체가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국가가 지원은 하면서 기후·환경 부담은 지역과 공동체에 떠넘긴다는 이유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6월 21일 이후 유럽 초과사망이 1,300명을 넘었다고 집계했습니다. 프랑스 피소는 44.3도를 기록했고, 세계기상기구는 이번 폭염을 유럽 대륙 관측 사상 최악으로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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