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AI를 도구로 쓸 것인가 인프라로 쓸 것인가
1강을 처음 시작할 때로 돌아가보겠습니다.
AI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고, 창을 닫았습니다. 다음 날 비슷한 질문을 또 던졌습니다. AI는 또 처음부터 설명했습니다. 매번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AI가 똑똑하다는 건 알겠는데, 내 것이 되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md 파일이 50개 쌓인 시점부터 뭔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새 주제를 공부하려고 할 때, 관련 메모가 이미 있습니다. AI와 대화를 시작할 때, 맥락을 처음부터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달에 정리한 개념이 이번 달 글쓰기에 연결됩니다. 메모들이 서로 대화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게 카파시가 말한 “지식이 복리로 쌓인다”는 것의 실제 모습입니다.
주식 투자에서 복리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자가 이자를 낳는 구조입니다. 처음 몇 달은 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붙습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메모 10개일 때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메모 100개가 됐을 때, 그 100개가 서로 연결되면서 전혀 새로운 통찰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연결이 생깁니다. “이 두 개념이 사실 같은 말이었구나”, “이 문제의 답이 저기 있었구나” 하는 순간들이 옵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AI가 정리해준 것을 읽고 나서 내가 실제로 사유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부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카파시 방식의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AI가 정리해준 위키를 읽다 보면 “내가 이걸 이해했다”는 착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AI가 이해한 것을 내가 읽은 건데, 내가 이해한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이 착각이 위험합니다.
진짜 이해와 AI 요약을 읽은 것의 차이는 하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으로 뭔가를 새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입니다. 물리학자 파인만(Feynman)은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없으면 모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 반박을 할 수 있느냐, 다른 개념과 연결할 수 있느냐. 이게 안 되면 아직 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메모를 저장할 때 “내 질문” 항목이 중요한 겁니다. AI가 정리해준 내용을 읽고, 내 말로 질문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 이 과정이 수집과 사유를 나누는 경계선입니다. 질문을 만드는 순간, 그 지식은 내 것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제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개념을 짚고 싶습니다.
AI를 도구로 쓰는 것과 인프라로 쓰는 것의 차이입니다.
도구는 필요할 때 꺼내 씁니다. 망치처럼. 못을 박을 때 꺼내고, 다 쓰면 넣어둡니다. 다음번에 꺼낼 때 망치는 지난번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망치는 기억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인프라는 다릅니다. 도로처럼, 전기처럼, 인터넷처럼. 인프라는 항상 거기 있고, 쌓이고, 연결됩니다. 처음에는 도로 하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도시가 됩니다. 도로가 많아질수록 이동이 빨라지고,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게 됩니다.
AI를 도구로 쓰는 사람은 매번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합니다. AI를 인프라로 쓰는 사람은 갈수록 출발선이 앞으로 이동합니다. 메모가 쌓일수록, 컨텍스트가 두꺼워질수록, AI와의 대화 밀도가 달라집니다. 6개월 전에는 “이게 뭐야”라고 물었다면, 지금은 “이게 저것과 어떻게 다르고, 내 상황에서는 어떻게 써야 해”라고 물을 수 있게 됩니다. 질문의 수준이 올라가는 겁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md 파일 하나입니다. 오늘 읽은 글 하나. 핵심 개념 세 가지. 내 질문 두 개. 파일 이름에 날짜와 키워드. 저장. 대화가 끝나면 /karpathy.
거창하지 않습니다.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행동이 매일 반복되면, 3개월 뒤에는 AI와 완전히 다른 대화를 하고 있을 겁니다. 카파시가 “코드를 조작하는 데서 지식을 조작하는 데로 넘어왔다”고 했을 때, 그 넘어오는 과정의 첫 걸음이 바로 이겁니다.
카파시 방식의 md 활용법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첫 번째 .md 파일, 지금 만들어보시면 어떨까요.
FAQ
AI를 처음 쓸 때 “AI 저작권이 뭐야”라고 물었다면, 지금은 “지난달에 정리한 EU 결의안 메모 기반으로, 한국 저작권법과 충돌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분석해줘”라고 묻습니다. 질문이 구체적이고, 맥락이 있고, AI가 처음부터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차이가 인프라로 쓴다는 것의 실제 모습입니다. AI가 똑똑해진 게 아니라 내가 AI에게 주는 맥락이 두꺼워진 겁니다.
맞습니다. 쌓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그냥 디지털 창고입니다. 꺼내 쓰는 습관을 만들려면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합니다. 실용적인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새 대화를 시작할 때 관련 메모가 있는지 옵시디언에서 먼저 검색하는 것을 루틴으로 만드는 겁니다. 둘째, /karpathy로 저장할 때 “다음에 이어서 할 것” 항목을 반드시 적는 겁니다. 그러면 다음 대화를 시작할 이유가 메모 안에 이미 있습니다.
반대입니다. 이 시스템을 제대로 쓰면 차이가 더 선명해집니다. AI가 정리해준 내용을 읽고 질문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 그건 아직 내 것이 아닙니다. 질문을 만들 수 있다면 — 그건 직접 공부한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내 것이 된 겁니다. 수집 과정을 AI에게 넘겼을 뿐, 사유는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시스템이 사유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사유할 시간을 확보해주는 겁니다.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그리고 쌓아둔 파일이 있다면 중간에 멈춰도 자산은 남아 있습니다. 노션에 글을 쓰다 멈추면 미완성 문서만 남지만, 마크다운 메모는 파일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다시 시작할 때 이전 파일을 Claude에 올리면 중단된 지점에서 바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 멈춰도 파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이게 마크다운 기반 시스템의 조용한 강점입니다.
파일 하나만 만드시면 됩니다. 오늘 읽은 글 하나를 골라서 Claude에 링크나 본문을 붙여넣고 “핵심 개념 3개, 질문 2개 뽑아줘. 마크다운 파일로 저장해줘”라고 하세요. 다운로드 버튼을 누르고, 파일을 폴더에 넣으면 끝입니다. 옵시디언도, Karpathy 스킬도, 지금 당장 필요 없습니다. 첫 번째 .md 파일을 만드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시스템은 그 파일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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